[청사초롱-이나미] 憲裁 무시 침묵할 수 없다

입력 2017-01-17 17:21

유벌 레빈의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은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아주 명쾌하게 짚어준다. 보수 혹은 진보라고 자평하는 이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진보는 곧 종북 좌파다’라고 몰아붙이거나 ‘보수는 수구꼴통이다’라고 단순화시키는 이들에게 필요한 책이지만 그들의 독해 수준으로는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의 혼란과 폭력성을 보면서 왕정과 귀족계급의 존치를 옹호했다. 어린 시절부터 고생고생하며 평민으로서 생존 그 자체가 위협받았던 토머스 페인은 진보를 옹호하면서 모든 이에게 근본적인 평등과 자유와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 민주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버크의 논리는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헌법을 수호하고, 인권을 보장하며, 도덕과 질서를 지키자는 목소리는 지금도 의미가 있다. 대다수 보수들이 전통과 질서정연한 생활의 가치를 지켜 나가는 자신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고, 주변에서 존경받는 이유다.

한데 탄핵의 와중에 보수들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도통 내지 않고 있어 의아하다. 필자의 경우 시부모님을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고, 14대 종부로 봉제사를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남편과 아들을 존중해 살고 있으며, 의사로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환자를 보고 있으니 보수적인 삶을 살고 있는 편이다. 대단한 이론은 몰라도 보수적인 삶을 사는 평범한 이 땅의 정상적인 여성들과 다르지 않다. 범칙금이 나오면 제때 내고, 이중계약서 같은 것은 절대 쓰지 않고, 굳이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소득까지 성실하게 신고한다. 어려서부터 거짓말이나 남의 물건에 손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란 사실이 뼛속 깊이 각인되며 성장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법을 지켜야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가고, 사회가 안전해야 나와 내 가족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 보수 중의 가장 굳건한 보수라고 스스로 일컫던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보면서 그동안 보수적으로 살았던 내 삶의 근본이 흔들리는 불안감을 느낀다. 성실하게 검찰 조사를 받겠다, 중립적인 특검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죄의식 없이 깨버리더니 이제는 우리나라 헌법의 가장 최고 권위인 헌재까지 무시하고 아예 그녀는 물론 모든 수하들이 나타나지도 않는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탄핵될 만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아닌지는 법도 수사도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판단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백번 양보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을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이 이처럼 철저히 무시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 재판관들이 그녀가 죄 없다고 면죄부를 준다면, 이 나라는 완전히 법도 질서도 없는 무정부주의적인 상태로 가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대통령이 지키지 않는 법을 그 누가 지키려 하겠는가. 아들 결혼도 시키지 못했고, 오순도순 평화롭게 이 땅에서 손주들과 살고 싶은 나로서는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상상만 해도 무섭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처한 것은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헌법 앞에서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고 위증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미국 시민들은 거짓말하는 대통령은 당연히 탄핵감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에게 이겼던 이유 중 하나가 이메일과 관련된 클린턴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정치에 모처럼 관심을 갖고 온 국민이 지켜보는 와중에 대부분의 증인과 피의자들이 밥 먹듯 거짓말을 하거나 아예 꽁무니를 빼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배울까 겁난다. 법과 질서와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보수적 삶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요즘 대통령의 행적들에 분노하는 마음이 더욱 큰 것이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