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은 ‘참회록’에서 자신의 탐욕스런 죄가 어릴 적부터 있던 죄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어린이를 두고 순결하다고 하는데, 어거스틴은 어린이는 “그 지체가 여리다는 것뿐이지, 그 마음 바탕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어렸을 적 죄를 회개합니다. “언제나 마구 보채면서 탐욕적으로 어머니 젖가슴에 매달렸던 일”을 떠올리면서 만약 성인이 된 자기가 “어떤 음식을 놓고 그토록 염치없이 매달린다면 누구라도 나를 꾸짖거나 비웃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우리는 원래부터 탐욕을 지닌 죄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연로하신 은퇴목회자들이 함께 생활하시는 곳을 위로 차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희 일행은 선배 목회자들을 위해 각종 음식과 간식을 정성껏 준비해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원장 목사님이 준비해간 간식을 인원수대로 일일이 분류하여 별도의 보관함에 넣는 수고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궁금해서 제가 물었습니다. “그냥 거실에 놓아두고 필요할 때 가져가게 하시지 왜 미리 나눠놓으십니까.” 원장님 대답이 “처음에는 그렇게 했는데, 거실에 놓아두면 다 드실 것도 아니면서 미리 챙겨다 놓습니다. 나중에 옷장이나 침대 밑에서 다 녹거나 상한 채로 발견됩니다. 그래서 개인 별로 미리 분류해 놓았다가 필요한 대로 자기 것을 갖다 드시라고 나눠놓습니다.”
그 설명을 듣고 금방 공감이 됐습니다. 교회에서 노회 등 큰 회의를 개최하면 식사를 대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간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풍성하게 준비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때론 간식비가 식사비보다 더 많이 지출됩니다. 하루 종일 드실 수 있도록 부족하지 않게 넉넉히 준비했다고 여겼는데, 펼쳐놓은 지 불과 한두 시간만 지나면 벌써 간식이 없다며 비상이 걸립니다. 다음 날 제공할 비축분까지 미리 꺼내오고, 추가로 준비하러 장을 보러갑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좀 의아합니다. 자신의 몫을 미리 넉넉하게 챙기려는 마음에 다 드실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머니에 가득 넣어놓기 때문입니다. 평생 내려놓으라 선포하고, 평생을 비우라는 말씀을 듣고 살아온 신앙의 사람들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할 경우에는 적당량을 분배해 시간마다 따로 내는 수고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예정한 분량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주님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25)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현실의 삶에서 소유를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갖은 애를 씁니다. 완전한 무소유로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비워두면 훨씬 더 여유롭고 행복한데, 그 비움이 쉽지 않습니다.
벌써 20년 넘게 목회자로 살며 비워보려고 노력해도 아직도 불안한 마음 때문에 비우지를 못해 전전긍긍합니다. 목회가 언제 힘들었나 생각해보면 자꾸만 내 의지나 욕심대로 채우려고 할 때였습니다. 목회가 언제 행복했나 돌아보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내려놓고 비워서 주님의 은혜로 채우려 할 때였습니다. 오늘도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주님만으로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비우고 사는 게 쉽지 않습니다.
박재필 목사 (청주 청북교회)
약력=△장로회신학대 대학원 △예장통합총회 MK사역위원장 △한국교회 노인학교연합회 이사 △국제사랑재단 이사
[나의 목회 이야기] 정말 어려운 일, 비움
입력 2017-01-17 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