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436장(통 493)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17장 15∼19절
말씀 : 창세기 17장에는 매우 중요한 사건 세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는 이름이 바뀌는 역사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사래가 사라가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이름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의지표명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열국의 아버지가 되라, 열국의 어머니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새로운 이름은 하나님이 그동안 아브라함에게 수차례 언약이라는 이름으로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이름은 서로 부르기 위해 존재합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사라!’ ‘열국의 어머니!’,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 ‘열국의 아버지!’라고 부를 때마다 자식을 낳지 못한 사라에게는 아픈 상처를 드러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면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축복의 시간이 됐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 약속을 기다립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브라함은 할례를 행합니다. 99세 나이라 쉬운 결정도 아니었고 자신뿐 아니라 소유의 모든 남자들에게도 그리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말도 안되는 이 일에 순종합니다. 육체적 고통이 심했습니다. 며칠 동안 고통을 겪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깁니다.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셋째는 이삭의 축복입니다. 우리교회 남태중 장로님 가정과 김남순 장로님 가정은 요즘 웃음이 떠나가지 않습니다. 손주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기쁨이 세상 그 어떤 기쁨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라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16장에서 이미 자신의 몸에 대해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오죽하면 자기 몸종을 통해 자식을 보려고 했겠습니까. 그 일 후에 이스마엘 나이가 13세라고 했으니 14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이제 사라는 90세입니다. “사라의 몸에서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래, 그러면 좋겠지. 그러나 그게 말이 되나?” 그러면서 허탈한 웃음을 짓습니다. 아브라함은 오죽하면 “이스마엘이나 잘 키우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라고 완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삭이라고 이름까지 지어주십니다.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허탈한 웃음이 아니라 진짜 웃음을, 기뻐서 춤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그 생명의 웃음을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축복의 메시지가 오히려 사라에게는 아픔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 지키는 이들에게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너머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삭입니다. 웃음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순종하면서 나아가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때로는 기다림에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게 고통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삭의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끝까지 충성해 승리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주기도문
방일섭 목사(서울 두모갓교회)
[가정예배 365-1월 18일] 웃음
입력 2017-01-17 2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