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에 400야드… PGA '토'네이도

입력 2017-01-16 21:08
저스틴 토마스가 지난 8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 카팔루아 플랜테이션 코스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SBS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3라운드 13번홀에서 공중으로 뛰어 오르는 듯한 자세로 드라이브샷을 때리고 있다. 키 178㎝에 몸무게 66㎏로 왜소한 체격인 토마스는 두 발이 모두 지면에서 떨어질 듯 몸을 튀어 오르도록 해 최고 400야드가 넘는 장타를 날린다. AP뉴시스
저스틴 토마스(오른쪽)와 조던 스피스가 지난 14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소니오픈 2라운드를 앞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동갑내기인 두 선수는 어린 시절부터 우정을 쌓아오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AP뉴시스
‘스피스의 그늘에서 벗어나 PGA(미국프로골프) 대세로.’

저스틴 토마스(24·미국)는 세계 톱랭커인 조던 스피스(미국)의 절친으로 유명하다. 동갑내기인 둘은 열세 살 때인 2006년 미국주니어골프(AJGA) 대회에서 처음 골프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토마스에게 스피스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2012년 미국대학스포츠(NCAA) 골프 결승전에서 토마스와 스피스는 각각 앨라배마대와 텍사스대 소속으로 맞붙었다. 당시 스피스는 15번홀 벙커에서 그대로 공을 칩인 샷으로 홀에 넣어 토마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토마스는 이 경기를 아직도 가장 가슴 아팠던 패배로 떠올린다.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토마스는 이듬해 프로로 전향했지만 PGA 투어에 진출하지 못했다. 2부 투어인 웹닷컴 투어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었다. 2014년 웹닷컴 투어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2015년 PGA 투어에 뛰어들었다. 투어 첫해 토마스는 준수한 성적을 냈다. 7차례 톱 10에 들었고, 톱 25안에는 15차례 들었다. 그래도 친구 스피스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스피스는 PGA 투어 데뷔 해인 2013년 존 디어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하는 등 통산 8승을 거두며 한 때 세계랭킹 1위까지 올랐다. 메이저대회에서도 2승을 거뒀다. 갤러리들은 토마스를 스피스의 라이벌이 아닌 친구 정도로만 인식했다.

이를 악물었다. 절친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샷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짧은 비거리가 항상 문제였다. 중학교 시절 파3홀에서 드라이버를 잡기도 했다. 성인이 돼서도 키 178㎝에 몸무게 66㎏로 왜소한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그는 물구나무 서기 등 거듭된 훈련으로 나름의 근력과 유연성을 길렀다. 또 자신만의 스윙 비법도 터득했다. 독특한 ‘공중부양 스윙’은 이때 탄생했다. 두 발이 모두 지면에서 떨어질 듯 위쪽으로 몸을 튀어 오르도록 해 클럽 헤드에 더 많은 스피드를 냈다. 어느덧 그의 약점은 강점으로 변했다. 지난해 7월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에선 무려 414야드를 때려냈다. 지난 시즌 PGA 투어 드라이버 최장거리 기록이었다. 몸집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비거리에 사람들은 ‘마른 장타자’라는 별칭을 붙였다.

장타에다 숏게임 실력도 뛰어났지만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2015년 2월 노던트러스트 오픈에서 토마스는 2라운드까지 5언더파로 선두권에 포진했다. 쉬운 코스여서 최종 스코어가 10언더파는 돼야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자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결국 그는 남은 두 라운드에서 보기 플레이로 무너지며 공동 41위로 경기를 마쳤다. 토마스는 “그냥 하던 대로 계속 했더라면 우승했을 것이다. 우승을 못하더라도 1언더파만 더 쳤어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다”며 “나는 내 스타일대로 플레이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평정심을 갖는 것이 장타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이후 그는 경기 때마다 마음 속으로 “딱 1언더만” “침착”을 외치며 클럽을 잡았다. 2015년 10월 말레이시아 CIMB 클래식에서 마침내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17시즌, 엄청난 비거리에 무심 타법이 본격적으로 더해지자 토마스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 지난해 10월 열린 2017시즌 두 번째 대회인 말레이시아 CIMB 클래식을 2연패하면서 괴물 모드의 시동을 걸었다. 새해 들어서는 SBS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 이어 16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와이알레이 골프장(파70·7044야드)에서 막을 내린 소니오픈에서도 우승했다. 타이거 우즈(41·미국), 로리 매킬로이(28·북아일랜드)에 이어 30세 이하로 2주 연속 PGA 정상에 오른 세 번째 선수가 됐다. 이 대회에서 달성한 27언더파 253타는 PGA 투어 72홀 최소타 기록이었다.

이제 그는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토마스는 “앞으로 더 많은 우승 기회가 찾아올 것으로 생각한다. 즐겁게 치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의 우승에 가장 기뻐한 것은 절친 스피스였다. 스피스는 “토마스는 원래 재능이 있는 선수였다. 시기가 문제였을 뿐”이라고 축하했다. 소니오픈 우승 후 토마스의 세계랭킹은 12위에서 8위로 올랐다. 2016년 마지막 랭킹(22위)과 비교하면 불과 2주 만에 14계단이나 도약했다. 이제 골프팬들은 아무도 토마스를 스피스의 친구로만 여기지 않는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