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 崔… 국정농단 송두리째 부인하며 朴 두둔

입력 2017-01-17 05:09
최순실씨가 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5차 공개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한 그는 시종일관 국정농단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검찰의 강압수사와 억울함을 토로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정농단 실체를 증언할 의무를 갖고 16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나온 최순실(61·수감 중)씨가 자신의 혐의사실 모두를 부정함은 물론 적반하장(賊反荷杖·도둑이 오히려 몽둥이를 듦)의 태도를 보였다. 검찰과 특별검사의 수사에 대해 “대한민국 검사들이 제대로 수사할 의지가 있나, 사람이 거의 죽을 지경”이라며 “너무 압박, 강압 수사를 받아서 특검에도 못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인 입회하에 자신이 읽고 날인한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서도 “새벽까지 조사를 받고 뻗어 있었다”며 내용을 잘 모르겠다고 버텼다.

최씨는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는 데서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을 두둔하고 나섰다. 한낱 사인(私人)으로서 청와대에 출입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대통령 의상 제작과 관련한 질문들은 모두 “대통령의 사생활과 관련이 돼 있다”며 일절 증언을 거부했다. 입국 후 검찰 소환 당시 “죽을죄를 지었다”며 혼비백산했던 태도와 판이했다.

“유도신문, 대답 않겠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 제5차 변론기일에서 최씨는 미르·K스포츠재단, 더블루케이, 플레이그라운드 등 자신이 실소유하거나 운영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난 재단과 기업들을 둘러싼 질문들에 모두 증언을 거부했다. 최씨는 국회 소추위원 측 질문에 “형사재판과 관련돼 있다”며 말을 하지 않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검찰 신문을 받는 게 아니므로 유도신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고 맞서기도 했다.

“대답할 수 없다”와 “기억나지 않는다”로 대부분 대답을 갈음하던 최씨는 국정농단으로 사익을 추구했느냐는 질문에는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모인 출연금이 결국 개인 회사인 더블루케이 등으로 흘러가게 하는 사업구조라고 소추위원 측이 지적하자, 최씨는 “더블루케이가 이득을 보려 했다고 나를 몰아가는 건 타당하지 않는다고 본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이어 “실제적으로 돈을 먹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미르 등에서 돈을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 통장을 보면 개인이득을 취한 게 없다”고 강변했다.

최씨는 언론의 보도와 검찰의 수사,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시인 순서로 드러난 본인의 국정농단 사실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했다. 압수수색된 자신의 컴퓨터에서 드러난 자료들에 대해서는 “하도 컴퓨터를 많이 압수했다고 나오니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고 뻗댔다. 스스로 날인한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서도 “이걸 다 읽어봐야 내가 읽었다고 날인한 것인지 아닌지 말할 수 있겠다”고 버텼다.

최씨는 문화체육 사업 과정에서 함께 일했던 고영태(41)씨와 차은택(48·수감 중)씨 등은 ‘걔들’이라 호칭했다. 그러면서 주변인들이 자신을 오히려 억울한 입장에 처하게 했다며 혐의를 미루는 태도를 보였다. 더블루케이 등 법인들의 사업구조를 짠 것은 모두 고씨와 차씨 등이라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 죽어” 발언으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신의 ‘증거인멸 지시 녹취록’에 대해서는 “자기들이 한 말은 빼고 나를 이용해 그렇게 녹취를 유도한 것”이라고 답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에 직접 관여했다는 언론보도를 바탕으로 한 질문에는 “그게 증거가 있나요”라고 되물었다. “정부 조직을 이용해 이권을 도모한 것 아니냐”고 소추위원 측이 묻자, “어떤 이권을 도모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시라”고 되받아쳤다.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박한철 헌재소장을 바라보며 “지금 여기 재판장님도 계신데 정말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모습도 있었다.

그렇게 하다 역풍 맞아요

이날 소추위원 측이 최씨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최씨가 나눈 대화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 소추위원 측이 제시한 2013년 2월 17일 정호성(48·수감 중) 전 청와대 비서관의 녹취록에 따르면 박 대통령과 최씨는 문예부흥 문화부흥 문화창달 등 여러 낱말을 거론하며 취임사에 들어갈 문화체육사업 관련 문구를 의논했다.

이때 박 대통령이 “문화융성은 어때요, 문화융성?”이라 말하자 최씨는 “문화체육”이라 하면서 “사실은 그건데, 너무 센가?”라고 되물었다. 이에 박 대통령은 “너무 노골적으로…”라고 말을 흐렸다. 최씨가 “그럼 완전히 뒤집어져, 문화체육은”이라고 했고, 이에 대한 박 대통령의 답변은 “너무 그렇게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역풍 맞아요”였다.

소추위원 측은 이 대화 자체가 문화체육 분야에 대한 국정농단의 기획을 방증한다고 지적했다. ‘역풍’이라는 말의 이유는 두 재단의 설립이 당시부터 기획됐다는 방증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씨는 “대통령의 정책 철학으로 정해진 것”이라며 “내가 다 주도한 것처럼 말하지만 그 부분만 따서 이야기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맞섰다.

박 대통령이 퇴임 이후 미르·K스포츠재단을 운영할 의도였느냐는 질문에는 “그분은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정유라(21)씨의 동창 학부형이 운영하는 유망 중소기업을 박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대기업 판로의 대가로 샤넬백 등을 받은 일이 드러났지만 “그분께서는 친인척, 측근 말을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다”며 끝까지 감쌌다.











이경원 양민철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