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 동양화과 졸업 작품전에 나온 비디오 작품을 보고 교수며, 동기생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랬던 ‘삐딱이’, 홍익대 동양화과 ‘90학번 미운 오리 새끼’가 45세 턱걸이로 신진 작가에게 주는 상을 받고 비상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삼탄이 세운 송은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제16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자로 최근 결정된 김세진(46) 작가다. 신진에게 주는 상 대부분의 나이 제한이 40세인 것과 달리 이 상은 45세다. 그는 지난해 응모해 염지혜 이은우 정소영 등 최종 후보에 오른 다른 30대 후배 작가를 제치고 대상을 안았다.
지난 10일 그를 포함한 최종 후보 4인의 작품전인 ‘송은미술대상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응모할까 말까 주저하긴 했어요. 30대 후배들과 경쟁한다는 게 반칙한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예전 같으면 못했을 거예요. 영국 유학 후 생각이 달라졌어요. 이 상이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데, 못할 건 없잖아요.”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동양화를 배워 자연스레 미대 전공도 그렇게 선택했지만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전기가 왔다. 막 캠코더가 대중화되던 1990년대 초반, 친구에게 빌린 캠코더에 그야말로 뿅 갔다. 고집을 피워 졸업작품전에도 영상작품을 냈을 정도. 이후 그녀의 이력은 영상으로 점철돼 왔다. 서강대 영상대학원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상업영화판에도 기웃거렸다. 영화판의 군대 문화가 맞지 않아 30대 후반에 결국 순수 미술로 돌아온 그녀가 택한 게 영국 유학이다.
런던 슬레이드 미술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하며 미술 작업 못지않게 예술하는 태도를 배웠다고 했다. “균형 감각을 길러줬어요. 예술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펀딩 방법도 고민하게 해줬어요. 포트폴리오 만드는 법, 공모전에 지원하는 법 등을 배웠습니다. 작업을 변론하는 실력, 그러니까 말싸움도 굉장히 늘었어요. 하하.”
송은미술대상은 1차 포트폴리오 심사에 이어 2차에선 신작을 내게 해 경합시킨다. 김 작가의 영상 작품 ‘도시은둔자’(2016)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 안내원 보안요원 등 미술관에서는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직업인들을 다룬 영상이다. 또 작품 ‘열망으로의 접근’(2016)은 인종의 용광로 미국 이민사를 유럽인 아시아인 중남미인 등 세 인종으로 나눠 다룬다. 이민자들의 꿈과 애환 뿐 아니라 미국 이민 당국의 인종적 차별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35세 전에 붓을 꺾기 쉽다는데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건너왔는지를 물어봤다. 그녀의 30대도 불안하고 막막했다. 작가로 먹고 살 수 있을까, 결혼은 해야 하나 말아야 되나 …. “마흔 고개를 넘으며 결심했어요. 불필요한 고민은 버리자고요. 그랬더니 막막함이 사라지는 거 있지요. 오히려 지금 하는 작업에 더 몰두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는 이번 수상으로 상금 2000만원을 받는다. “상금은 다음 작업을 위한 종잣돈이지요. 새로 사야할 장비 견적을 뽑아봤는데 1000만원이 넘어요. 아휴…. 여기저기 한 턱 내라는 데 큰일이에요.” 엄살 섞인 목소리에서 그의 표현대로 ‘헌 거 같은 새 거’ 김세진 작가의 희망찬 새해 출발이 읽혀졌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동양화과 졸업전에 비디오 작품 낸 ‘삐딱이’… 송은미술대상 대상 받은 김세진 작가
입력 2017-01-17 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