恨을 치유로… 모국서 불치병 치료 받는다

입력 2017-01-16 21:26
사할린 잔류 1세대 동포 소보금(왼쪽) 황정수(오른쪽) 할머니가 16일 서울 중국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무료 진료를 받고 있다. 윤성호 기자

“개한테 물린 팔이 너무 아파서 잘라낼까도 생각했어요… 러시아에서는 고칠 수 있다는 의사가 없어요.”

러시아 사할린으로 이주한 아버지를 따라 다섯 살에 한국을 떠난 김영순(81) 할머니는 16일 서울 중구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았다. 의료원과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함께 사할린 잔류 동포 1세대 어르신 22명을 초청해 검사와 치료를 진행했다.

김 할머니는 이번이 두 번째 한국 방문이다. 그는 사할린에서 작은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다. 1992년 정부 초청으로 지금은 작고한 남편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는데 남편은 한국에 두고 온 조카들의 편지를 사할린에서도 많이 기다렸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10년 전 사람 크기만한 개한테 오른쪽 어깨를 물렸다. 처음에는 어깨만 아팠는데 시간이 흐르자 다리까지 통증이 왔다. 김 할머니는 “병들어 죽은 돼지를 먹으며 크던 개한테 물려 병균이 옮은 것 같다”며 “자다가도 놀라고 입도 마르고 몸에서 열도 나 죽을 날만 기다렸는데, 한국에서 치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철호(83) 할아버지는 강제 징용당한 아버지를 따라 1940년 정월 초하룻날 사할린으로 이주했다. 오 할아버지는 “집안에 작은 땅이 있었는데 일제가 이를 빼앗으려 아버지를 강제노역 보냈다”며 “당시 소련에서 대다수 외국인은 아무리 공부해도 벌목 공사 같은 노동밖에는 하지 못했고 인종차별도 심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 할머니와 오 할아버지처럼 각자의 사연을 가진 백발의 어르신들이 모인 의료원은 잔칫집 같은 분위기였다. 이들 중 10명은 당뇨를 앓았고, 16명은 고혈압이나 심장 질환을, 5명은 뇌혈관계 질환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고국을 찾았다는 기쁨, 치료를 받게 된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혈액검사와 같은 검진을 받으면서도 쉴 새 없이 옆자리에 앉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료원 전숙하 진료부장은 “요로결석이 있는데도 치료를 못 받아서 아직도 신장에 돌을 갖고 계신 분도 있다”며 “비록 이분들을 치료할 기간이 한 달 미만으로 짧지만 안과 수술이나 협착증·척추 질환 등은 수술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요한 재단 이사장은 “사할린 잔류 1세대 동포들이 고령이기 때문에 많은 분이 만성질환과 노인성 질환을 겪고 있다”며 “이번 초청진료를 계기로 가급적 많은 한인 1세대 동포분들이 의료지원서비스 혜택을 받으실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사진= 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