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설립을 주도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출연금을 내놓고 박근혜 대통령의 각종 민원해결에 앞장섰던 주요 대기업들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본격 수사착수 이후 적극적인 피해자 입장 알리기 행보에 나서고 있다.
출연금을 낸 대다수 기업은 지난해 10월 검찰 특별수사본부 구성 이후 수사가 시작되자 ‘재단 설립 취지에 공감해 돈을 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냈다’고 해명한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11월 12∼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는 2015년 7월 박 대통령과 개별 면담을 했던 것으로 지목된 대기업 총수 7명이 불려 나왔다. 당시 대기업 총수들은 기금 모금의 강제성은 일부 인정하면서도 “순수한 의도로 기부금을 냈다”며 대가성은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독대에서 최씨 일가를 위해 각종 청탁을 한 박 대통령의 발언 등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9일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같은 달 21일에는 박 특검팀이 출범하면서 기업들의 미묘한 입장 변화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최씨 일가에 약 90억원을 지원해 뇌물죄 관련 특검팀 수사의 제1타깃이 된 삼성은 특검팀 조사에서 ‘박 대통령이 독대 자리에서 승마지원을 적극 요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16일에는 박 대통령이 손경식 CJ그룹 회장과의 독대에서 방송 편향성 문제를 거론하며 불만을 표출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CJ는 관련 보도를 부인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현대자동차와 KT에도 최씨 일가를 위한 맞춤형 청탁을 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기업들의 피해자 입장 알리기는 특검팀이 돈을 낸 기업들의 뇌물공여 혐의 적용을 적극 검토하고 나선 것과 관련돼 있다. 협박·공갈에 의한 피해자가 될 경우 뇌물공여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말 바꾸기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계산된 행동’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박 대통령이 탄핵으로 ‘정치적 유폐’ 상태에 처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발언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됐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이제 말할 수 있다” 기업들, 피해자 코스프레
입력 2017-01-17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