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생활비 급해… ” 적금·보험 깨는 서민 크게 늘었다
입력 2017-01-16 17:51 수정 2017-01-16 21:00
팍팍한 현재 때문에 미래를 포기하는 가계가 늘고 있다. 식료품을 중심으로 물가가 치솟는데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자 적금·보험을 깨는 이들이 증가했다. 나중을 위한 목돈 마련, 위험 대비보다 당장의 생활자금이 필요해서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신한·KB국민·우리·KEB하나·농협은행)의 적금 해지 건수 중 중도해지 비중은 45.3%에 이르렀다. 2015년보다 2.9% 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5대 은행의 지난해 말 전체 적금 해지 건수는 656만7905건으로 전년(667만956건)보다 소폭 줄어든 반면 중도해지 건수는 2015년 282만6804건에서 지난해 298만4306건으로 되레 늘었다.
보험 해약도 증가세다. 41개 생명보험·손해보험사가 고객에게 지급한 해지환급금은 2014년 26조2000억원에서 2015년 28조3000억원으로 뛰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수준(22조9000억원)을 훌쩍 넘긴 것이다. 지난해 3분기 말까지 해지환급금은 22조9904억원이다. 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은 4분기까지 합치면 2015년 규모를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적금과 보험을 깨는 배경에는 물가와 소득이 자리 잡고 있다. 유가 상승과 맞물리면서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3% 올랐다. 체감물가는 이보다 몇 배 더 뛴다. ‘식탁물가’라고 할 수 있는 신선식품지수는 지난달 12.0% 상승하면서 4개월째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계란은 ‘금란(金卵)’이 됐다. 여기에 라면 등 가공식품도 야금야금 가격이 오르고 있다. 정부도 16일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공식 물가와 체감물가 간 괴리가 크다는 점을 인정했다. 정부는 대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반면 소득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을 보면 물가를 반영한 실질 가계소득은 2015년 3분기 이후 5분기 연속 정체되거나 감소했다. 소득계층별로 고소득층은 실질 가계소득이 늘었지만 중·저소득층은 줄었다. 지난해 3분기 소득 상위 20%(5분위) 소득을 하위 20%(1분위)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4.81로 3분기 연속 상승했다.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40대와 외벌이 가구의 소득도 악화일로에 있다. 우리 경제의 주축인 40대가 가장인 가구의 소득은 지난해 3분기 사상 처음 0.03% 감소했다. 외벌이 가구 소득 역시 3분기 연속 줄고 있다.
암울한 현재 상황은 서민들을 ‘일확천금(一攫千金)의 꿈’으로 내몬다. 기재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로또복권 판매금액은 3조5500억원(판매량으로 35억5000게임)으로 2015년(3조2571억원)보다 9%가량 증가했다. 판매금액 기준으로 2003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액수다. 판매량으로 사상 최대치다.
홍석호 기자, 세종=이성규 기자 will@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