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도 여전히 밝게 빛나는 해와 대지를 가르는 차디찬 바람으로 시작했으리라. 유럽의 기온이 지금보다 평균 1도 낮았다니 사뭇 매서운 날씨였으리라. 그러나 겨울추위보다 그를 더 춥게 만들었던 건, 그 땅의 교회지도자들이 무지한 사람들을 복음에서 멀어지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영광으로 삼고 있어 그리스도께서 다시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다는 것이었으리라. 그리하여 그는 새해를 맞아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주여, 진리를 거스르는 악을 보고도 뒷걸음질하는 저를 용서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 하셨던 것처럼 하늘 영광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주여 저를 도우소서.
지금부터 500년 전 1517년 새해를 맞았던 마르틴 루터를 생각해 보면서 써 본 글이다. 우리 모두는 새해가 되면서 많은 결심을 하고 기도를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결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미처 알지 못하고 우리의 기도가 어떤 응답을 받게 될지 알지 못한다. 루터도 그랬을 것인데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개혁하시되 루터에게 그 개혁의 깃발을 들게 하셨던 것이다. 그해 10월 31일 루터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죄용서의 은혜를 돈으로 환산하여 면죄부를 만들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판매하던 교회의 권력에 도전하며 개혁자가 됐다. 독일의 작은 도시 비텐베르크에서 시작된 그의 개혁은 독일 역사를 바꾸고 온 유럽을 바꾸며 1500년 교회의 역사에 ‘개신교’라는 새로운 교회를 추가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2017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온 세계인이 기대하며 기다려 온 해이다. 그런데 ‘종교개혁 500주년’에서 종교개혁이라는 이 익숙한 말은 원래의 말, 즉 ‘개혁(Reformation)’이 갖는 다양한 사실을 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개혁은 종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개혁되고 새로운 형태를 갖추게 했다. 가톨릭교회의 신학과 질서에 저항하는 일련의 신학자들과 전직 수사와 신부, 수녀들이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지역적 ·민족적 독립을 꿈꾸던 정치가들의 지지와 보호를 얻어 신학을 재정립하고 교회의 예배를 새롭게 했다. 그들의 신학은 국가와 종교 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사회 각 영역의 변화를 가져왔으니 16세기 개신교 개혁은 대변혁이요 혁명이다. 신학자들이 그리 큰 역할을 했던 때가 언제 또 있었을까 싶다. 교회가 세상의 중심에 서 있었으니 이 또한 다시 올까 싶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은 개신교 교회가 세워지는 개혁이 시작된 지 500년이 됨을 기념한다. 1529년 제2슈파이어회의는 루터와 그를 추종해 가톨릭교회의 신학과 실천에 저항하는 일련의 사람들을 ‘저항자들(Protestants)’이라고 불렀다. 개신교도라는 이름은 원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확증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왜곡하고 폐기하며, 성경의 권위를 내려놓은 모든 신학과 실천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저항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으니 이를 ‘개신교’라 의역할 수 있겠으나, 악에 대한, 잘못에 대한 저항의 의지를 담지 못했으니 심히 아쉽다. 보수와 진보라는 명칭으로 철저하게 너와 나를 구분하는 우리 사회에서 저항은 진보를 의미하여 경원시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저항은 진리를 지키기 위함이니 오히려 보수다. 그래서 개신교인들은 보수와 진보라는 식상한 이분법이 아니라 진리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저항한 16세기 개혁자들의 용기와 실천을 배워야 한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우리는 진리를 잘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악은 ‘내가 악이요’하며 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 안팎에 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악과 싸우는 것 자체가 당신을 선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오늘 밤 내가 악과 싸우지만 나 자신이 악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진리는 창조자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겸손히 인정하는 것이다. 이 진리를 깨달아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하신 말씀을 따라 악에 저항하며 개신교의 원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정숙 총장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시온의 소리] 종교개혁 500주년, ‘개신교’ 그 이름 다시 새길 때
입력 2017-01-16 2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