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10일 오전.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달동네 ‘백사마을’ 골목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주민 대부분이 차상위 계층인 이곳은 70대 이상 노인들이 많아 외출하는 주민이 많지 않았다. 마을 곳곳에 ‘○○재개발’이라 적힌 간판과 찢어진 플래카드가 나뒹굴었고 파손된 빈 집들은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마을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연탄재였다. 서너 집 건너 쌓여 있는 연탄재는 보기만 해도 온기가 느껴졌다. 칼바람이 불암산 자락과 맞닿은 마을 꼭대기에 더욱 세차게 불었다. 이때 바람을 가르며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이쪽으로 모이세요. 많이들 추우시죠. 그래도 여러분 덕분에 여기 주민들이 따뜻하게 지내십니다. 오늘은 연탄 2000장을 배달합니다. 열심히 해주실 거죠.”
밥상공동체·연탄은행(대표 허기복 목사) 신미애 사무국장이 연탄배달 봉사를 위해 방문한 자원봉사자들에게 배달방법을 설명했다. 이들은 브랜뉴뮤직과 워너뮤직 직원 50여명으로 배달 직전 연탄 앞에서 ‘화이팅’을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연탄배달은 백사마을 중에서도 고지대 거주자들에게 집중됐다. 모두 15가구에 130장씩 전달됐다. 2000장의 연탄 옆엔 10㎏ 쌀 10포대와 커피믹스도 보였다. 연탄은행은 연탄 외에도 쌀과 부식 등 먹거리도 제공했다.
봉사자들은 남성의 경우 연탄 6장씩 지게에 졌고, 여성들은 4장씩 짊어진 채 좁은 골목길을 드나들었다. 연탄 한 장의 무게는 3.5㎏. 1인당 14∼21㎏의 연탄을 날랐다. 좁고 가파른 길이 많아 손수레는 사용하지 못했다. 연탄은 순전히 사람의 수고와 땀으로 배달됐다.
브랜뉴뮤직 대표 라이머(본명 김세환)씨는 “봉사활동으로 올해를 시작하게 돼 기쁘다. 어르신들이 더 따뜻한 겨울을 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탄은행 대표 허기복 목사는 “백사마을 거주자들은 1000명 정도 된다. 늙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 누군가 연탄을 배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연탄은 누군가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야 불이 켜지고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90년부터 백사마을에 살고 있다는 최모(75)씨는 자원봉사자들이 연탄을 자신의 집에 쌓아놓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탄이 집에 들어오니 좋으시냐”고 묻자 “아유, 연탄은행 없이는 하루도 못 살아요” 했다. 최씨가 하루 사용하는 연탄은 5장 정도다. 최씨는 매달 연탄은행에서 150장의 연탄을 무상으로 지급받는다. 연탄이 떨어질 만하면 어디선가 ‘천사’들이 나타나 연탄광에 연탄을 쌓아놓는다고 했다. 최씨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젊었을 때는 집사람하고 맞벌이 했어요. 그때는 기름보일러를 써도 괜찮았는데 15년 전부터는 둘 다 몸이 아파서 일도 못하고 보일러도 연탄으로 바꿨어요. 이젠 연탄은행이나 봉사자들이 없으면 목숨이 위태로워져요. 이 동네 사람들, 다 마찬가지예요.”
정오쯤 되자 바람은 더 매서워졌다. 봉사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연탄은행 간사들은 배달할 가정의 골목 어귀에 서서 매서운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봉사자들을 안내했다. “두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셔서 첫 번째 집입니다. 고맙습니다.”
순수 시민운동단체인 연탄은행은 2002년 국내 처음으로 ‘사랑의 연탄은행’을 설립해 원주와 서울, 부산, 인천 등으로 확산됐다. 지금은 전국 31개 지역에서 연탄 나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번 겨울에는 정국 혼란 등으로 후원이 감소해 울릉도와 제주도 등 산간벽지와 도시빈민 지역에 연탄을 지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1577-9044·babsang.or.kr).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손에서 손으로 전하는 따뜻함… 연탄은 사랑입니다”
입력 2017-01-16 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