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원에 달하는 폐자동차 재활용 시장에서 대기업에 독점적 책임과 권리를 부여하는 법안이 발의돼 관련 중소기업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법안은 폐자동차 재활용률이 낮다는 이유로 재활용 시장을 대기업이 주도하도록 바꾸는 내용이어서 당초 좋은 취지와 달리 대·중소기업 간 종속관계만 심화시킬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15일 한국자동차해체재활용협동조합에 따르면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지난해 말 자동차 제조·수입업자에 자동차 재활용 책임과 독점적인 재활용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의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하 자동차자원순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폐자동차 분야에도 생산자책임활용제도(EPR)를 도입해 재활용 책임을 자동차 제조·수입업자로 일원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에는 시설기준을 만족하는 재활용 업자라면 누구나 모든 폐자동차 재활용이 가능했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자동차 제조·수입업자만 재활용 책임과 권리를 갖게 된다. EPR은 전지류, 타이어, 윤활유, 형광등, 양식용부자 등 5대 제품과 종이팩, 유리병, 금속캔, 합성수지포장재 등 포장재에 시행되고 있다.
한국자동차해체재활용협동조합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EPR은 그동안 의무생산자와 재활용사업자 간에 불평등한 갑을 관계를 형성하는 제도로 비판받아왔다”고 반발했다. 또 “개정안은 폐자동차 시장 전체에 대한 매집, 알선, 분배 등의 권한을 대기업인 자동차 제조·수입업자에 넘기겠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은 또다시 대기업에 예속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합은 개정안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인정받은 자동차 해체 재활용 업계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합에 따르면 2014년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자동차 제작업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자동차 해체 재활용 사업에 대기업이 참여하지 않기로 양해각서가 체결된 바 있다.
폐자동차 재활용 시장은 현재 국내 516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재활용 시장 규모도 연간 2조5000억∼3조원에 달한다. 폐차된 차량은 재활용 과정을 거쳐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 수출돼 왔다.
만약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수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큰 수혜자가 될 전망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와 한국수입차협회(KAIDA)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동차 시장 내수 점유율은 현대차 36.1%, 기아차 29.3%, 한국지엠 9.9%, 르노삼성 6.1%, 쌍용차 5.7%, 수입차 12.3%다. 현대차와 기아차 점유율만 65.4%에 달한다.
자동차해체재활용협동조합 양승생 이사장은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전국 516개 사업장 중 80%에 해당하는 420여개의 업체는 도산하고, 나머지는 대기업에 종속 계열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내수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현대·기아차는 전체 중 100여개 업체만 지정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명수 의원은 “자동차 폐기물이 충분히 처리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발의한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업체들과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 바꿔나가겠다”고 밝혔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3조원 자동차 재활용 시장, 대기업 손에 넘어가나
입력 2017-01-15 18:32 수정 2017-01-15 2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