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치킨집이나 하지 뭐.”
퇴직을 앞뒀거나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63년생)가 농담처럼 하는 얘기지만 이마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치밀한 사전 준비 없이 대출을 받아 창업하는 이른바 ‘묻지마 창업’에 대해 금융 당국이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당국은 금리가 본격적으로 오를 때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시한폭탄’으로 자영업자 대출을 지목하고 올해 집중 관리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위험관리 체계를 올 상반기 안에 세밀하게 다듬겠다고 15일 밝혔다. 구체적으로 은행들은 올해 안에 매출액, 연체 이력 외에도 자영업자 대출을 희망하는 사람이 어디에 어떤 가게를 열려고 하는지 살펴본 뒤 대출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만드는 과밀업종·지역 선정 기준 등을 참고해 과밀지역 창업 희망자에게는 가산금리를 매기거나 대출 한도를 조정할 수 있다.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한 지역에 치킨집, 카페, 김밥집 등이 몰려 있는 곳에서 동일 업종 가게를 열려는 자영업자들은 더 높은 금리를 물어야 하거나 원하는 만큼 돈을 빌리기 어려워진다. 과당경쟁이 우려되는 업종이나 지역에는 은행 대출 심사가 훨씬 깐깐해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영업자 대출을 집중 관리하고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자영업자 대출이 부실화될 경우 드러난 수치보다 더 큰 충격이 가계에 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개인사업자의 주택대출은 가계대출이 아닌 기업대출로 분류된다. 때문에 담보인정비율(LTV)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아 1, 2금융권 모두에서 LTV 70%를 초과해 대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영업자가 받은 주택담보대출은 주로 생활자금 등으로 사용하기에 사실상 가계부채 성격을 띤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자영업자가 2금융권인 저축은행에서 받은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지난해 9월 3조3996억원으로 전년 동월의 2조7269억원보다 24.7%나 늘었다. 이 중 LTV 70% 초과 대출 규모가 2조2848억원으로 전체 자영업자 주택담보대출의 67.2%를 차지했다.
자영업 자체도 악화일로다. 경기 침체로 업황이 좋지 않음에도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청년취업난 등의 이유로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가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자영업 등록 사업체는 전년보다 1만2000개 줄었지만 개업 2년 미만 신규 사업체는 3만4000개 늘었다.
간신히 사업을 이어가는 자영업자들은 소득 대신 빚만 늘었다. 자영업자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지난해 214%를 기록해 전년도(206%)보다 상승했다. 1년 내내 번 돈을 한푼도 쓰지 않고 빚 갚는 데만 쏟아부어도 전체 빚의 절반조차 갚지 못한다는 의미다. 특히 요식업계는 최근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금융위는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은 자영업자 부채 현황을 다음달 금융감독원, NICE평가정보 등과 연계해 집중 분석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상반기 안에 자영업자 유형을 생계형·기업형·투자형 세 가지로 분류해 맞춤 지원책도 내놓을 예정이다.
금융위는 전체 자영업자 대출의 39%를 차지하고 그 증가 추세도 가파른 부동산 임대업자 대출에 대해서는 특화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가령 임대업자가 3년 이상 대출을 받았다고 하면 다른 주택담보대출의 만기를 고려해 매년 원금의 30분의 1 이상을 분할 상환토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투데이 포커스] 치킨집 대출 제한 ‘닥’치고 창업 제동
입력 2017-01-16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