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공백 상태에서 2017년을 맞은 한국에 연초부터 복잡한 외교적 시련이 가중되고 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보복으로 보이는 다양한 제재조치도 강도가 더해지고 있다. 일본은 위안부 소녀상 설치를 둘러싸고 양국 위안부 합의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임을 강조하면서 대사 일시귀국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북한도 ‘지도자의 결정에 따라 임의의 시각과 장소’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발사될 것임을 강조해 핵과 미사일 개발의 지속을 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요 강국들이 이른바 스트롱맨(strong man), 즉 강성 지도자 전성시대를 맞고 있어 더욱 주의가 요망된다. 이제 며칠 후면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위대한 미국의 재건(make America great again)’을 내세우며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다. 여기에 기존의 중국의 꿈(中國夢)을 통한 대국주의를 선언한 시진핑 국가주석, ‘강한 러시아’를 주창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그리고 ‘보통 국가’를 향해 평화헌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까지. 절대 권력을 다진 강경 지도자들이 포진해 있다.
강성 지도자들은 모두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이전의 강한 국력에 대한 회고적이고 향수적인 민족주의(nostalgic nationalism) 성향을 갖고 있다. 강력한 국내 지지 기반도 확보하고 있다. 물론 민족주의적 권위를 적절히 포장해 국내 여론을 결집하고, 내부 문제를 외부로 확장해 내부 공격을 무력화하는 비민주적 시도도 하지만 향후 4∼5년 이상 집권이 가능한 공통점도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신년사에서 강성 이미지를 표출했다. 트럼프는 핵 능력 강화 등 군사력 증강을 천명하면서 미국 중심의 질서 유지를 강조했고, 시진핑은 처음으로 ‘영토 주권’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주권에 관한 한 어떠한 타협도 없음을 강조했다. 푸틴 역시 러시아는 ‘위대하고 특별한 나라’라면서 대중을 자극했고, 아베는 공격적 군사행동이 가능한 ‘적극적 평화주의’를 천명하면서 강한 일본 건설을 숨기지 않았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주요 강국의 자국 우선주의 강조는 신냉전(new cold war) 시대의 도래를 우려케 한다. 이념지향적인 구 냉전 질서와는 다른 구도에서 이전보다 영향력이 축소된 미국을 앞에 놓고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경쟁이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이익을 추구하는 무한 경쟁시대를 맞아 새로운 질서 구축 과정에서 각국 간에는 협력과 갈등 사이에서 치열한 밀고 당기기와 선택적 개입이 펼쳐질 것이다. 일단 미·중 양국은 새로운 국제 통상질서 구축과 북핵, 사드 배치나 남중국해 영유권, 환율조작국 지정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격돌이 불가피하다. 대중 견제에 러시아를 끌어들이려는 트럼프의 의중을 이용해 푸틴은 미국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한편 일본과의 협력을 통한 대중 견제, 사안별 대중 연대 강화로 대미 견제를 꾀할 것이다. 일본 역시 북한과 중국 견제의 일환으로 새로운 미·일 밀월관계 구축을 도모하면서 대러 접근도 시도할 것이다.
이제 세계적 이슈가 집중돼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주도권을 둘러싼 강대국 간 복잡한 파워 게임이 시작된다. 이들은 양자 협상이나 대화가 자국 의견 개진에 유리하기 때문에 ‘그들만의 리그’로 문제를 재단하려는 시도를 할 많이 것이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한국은 미·중 사이의 선택을 강요받는 것은 물론 북핵 문제 같은 정체절명의 사안에 대해서도 방관자가 되기 십상이다. 국내 문제에만 매몰되지 말고 이들을 상대할 미세하고 정교한 대외전략 수립이 시급하다.
강준영 중국정치경제학 한국외대 교수
[한반도포커스-강준영] 스트롱맨 시대에 필요한 미세외교
입력 2017-01-15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