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럭비공’ 트럼프… 각국, ‘한방’을 대비하라
입력 2017-01-17 05:02
오는 20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이 다가오면서 미국 신정부 정책에 대대적인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글로벌 통상환경이 급변하고 미국 내부적으로 대규모 투자가 진행될 전망이다. 이에 세계 각국은 발 빠르게 움직이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정지에 따른 리더십 공백을 겪고 있는 한국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불확실성의 시대
기획재정부가 12일 발간한 ‘미국 대선에 따른 주요 동향’ 보고서를 보면 미국 차기정부 내각에 강경파 인사들이 잇따라 내정됐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부 장관 내정자는 골드만삭스에서 17년을 근무한 은행가 출신으로 법인세 인하 및 금융규제 완화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상무부 장관으로 내정된 윌버 로스 로스차일드투자은행 회장은 반(反)중국 성향의 인사로 꼽힌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16일 “보호무역기조 강화 등 기존공약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중국에 대한 제재에 둘 것으로 예상됐다. 트럼프 당선인 스스로는 중국 상품에 대해 4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해 놓은 상태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공약도 제시한 바 있다. 기재부 보고서는 “이밖에도 양안문제 등 안보이슈가 겹쳐지면서 미·중 간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만 피터슨연구소, 미국기업연구소 등 미국 내 유력 국제경제연구소들은 “보호무역주의 강화, 재정확대와 감세, 저금리 정책은 서로 공존하기 힘들다”면서 신정부 정책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꾸준히 피력하고 있다. 오바마정부와 트럼프 인수위원회 간 인계인수 과정에서도 현 정부의 정책시각을 신정부에 전달·설득하려는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미국 민주당은 법무·국무·재무·교육부 내정자를 부적격 인사로 비판하고 있어 내각 검증절차가 장기화될 예정이다. 오바마정부 출범 당시에도 공화당의 검증으로 4월에 전체각료회의가 개최된 바 있다.
중국은 강수, 일본은 움찔
트럼프 정부의 공격목표로 공공연하게 지목된 중국은 강하게 반격을 가할 태세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중 경제 조치 이외에도 지난해 12월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미·중 37년 외교의 근간을 흔들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왜 우리가 하나의 중국 정책에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게다가 미국 현 정부는 지난해 연말 공식적으로 중국에 시장경제 지위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시장경제 지위를 얻지 못한 나라는 일반적으로 덤핑 마진이 높게 산정돼 고율의 반덤핑관세를 부과 받는다. 트럼프 정부가 이 결정을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중국 상무부는 즉각 세계무역기구(WTO)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또 최근 미국 신정부의 국무부 장관 내정자인 렉스 틸러슨이 중국에 대해 거침없는 비난을 쏟아내자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트럼프 외교팀이 현재처럼 향후 미·중 관계를 만들어간다면 양국은 무력 충돌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반면 일본은 기업들이 나서 대미 투자확대를 약속하는 등 적극적인 협력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경우 미국 스타트업 기업에 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일자리 5만개를 창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뒤 처음 연 기자회견에서 일본을 직접 거명하며 무역 불균형 시정 의욕을 보이자 일본 경제계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일본 정부는 트럼프 당선인이 폐기를 공언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발효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대체수단이 없다는 논리로 미국의 비준을 설득할 계획이다.
이밖에 미국과 통상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주요국들도 보호무역기조 강화에 맞서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호주는 미 신정부가 미·호주 자유무역협정(FTA)의 이행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FTA 재협상에 대비하고 있다. EU는 조속한 정상회담 개최를 요청하며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조하면서도 미국의 보호무역기조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표출하고 있다. 멕시코는 트럼프 당선인의 35% 관세 부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등 공약이 실현될 시 제조업 전반에 큰 타격을 예상하면서 대책을 준비 중이다.
이란과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완화될지는 불확실하다는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기재부 보고서는 “이란 제재는 영국·프랑스·독일 등과 합의한 사항”이라며 “미국 단독으로 재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어 “미·러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 간 관계, 미 의회의 제재유지 입장을 감안할 때 대러 제재 완화여부는 불투명하다”고 내다봤다.
한국은 집중소통으로 대응
기재부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 신정부 정책 기조의 변화에 따라 한국 경제에 대한 전반적 리스크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며 “정치적 불확실성도 확대됨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한국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체적으로 기재부는 “글로벌 공급과잉 품목인 철강·화학제품에 대한 미국의 수입규제가 반덤핑·상계관세의 형태로 강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미 FTA 재협상과 관련해선 “미 신정부의 우선 과제가 아닌 것으로 평가되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따라 이슈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예측했다. 미·중 간 통상마찰이 발생할 경우 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불똥이 튈 수 있고, 미·멕시코 마찰 시에는 멕시코 현지 우리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란 대목도 보고서에 나온다. 미국의 해외 이전기업에 대한 유턴 촉진으로 한국에 대한 투자유입이 위축될 수 있다는 걱정도 포함됐다.
다만 기재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신산업 육성, 대규모 인프라 투자,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 환경 개선 등 새로운 협력 기회도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우리 정부는 트럼프가 추진 의사를 밝힌 공항·도로·상수도·전력망을 건설하는 ‘1조 달러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기재부는 미국 신정부 출범에 따른 단계적인 소통계획을 수립했다. 1단계로 신정부 출범 전인 오는 20일까지 한·미 FTA의 호혜적 성과에 대한 집중적인 소통을 추진하고, 2단계로 신정부 출범 직후(1월 20일∼4월초) 정책이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고위급·민간 채널을 활용해 우리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신정부의 정책이 구체화·집행되는 시기인 4월초 이후에는 미국이 제기하는 이슈와 그 강도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세종=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