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코퍼레이션 대표 아내 “崔에 납품 민원 넣자 현대車서 먼저 연락 와”

입력 2017-01-13 18:15 수정 2017-01-14 00:46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직권남용 등 혐의로 함께 재판받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같은 법정으로 향하는 모습. 뉴시스
“언니(최순실)가 어디에 납품하고 싶으냐고 묻더라고요. 자기가 도와주겠다면서.”

최순실(61)씨 입김으로 현대차 납품업체에 선정된 혐의를 받고 있는 KD코퍼레이션 이종욱 대표의 아내 문모씨가 “최씨가 도움을 주겠다고 한 뒤 현대자동차에서 연락이 왔다”고 진술한 조서가 공개됐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씨 등의 국정농단 사건 3회 공판기일에서다.

검찰이 공개한 조서에 따르면 문씨는 “최씨와 만난 모임에서 ‘어느 회사에 납품하고 싶으냐’며 사업계획서를 달라고 했다”며 “A4용지 1장짜리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최씨에게 줬는데, 얼마 뒤 현대차 구매팀에서 먼저 연락을 해 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당시 현대차 구매본부장은 김용환 부회장에게서 ‘KD와 거래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고 거래 업체 리스트는 물론 인터넷까지 찾아봤지만 어떤 업체인지 알지 못했다”며 “이에 김 부회장이 직접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말씀하신 업체가 KD 맞는지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확인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와 계약이 성사된 뒤 문씨 부부는 최씨에게 현금 2000만원을 2차례 건네고 샤넬 백, 에르메스 구두, 미우미우 구두, 일본 여행경비 등을 제공했다. 문씨는 “서울 청담동 차움의원 앞에서 돈을 줬는데 잠시 후 최씨가 ‘우리 사이에 뭘 이런 걸 챙기니 얘는? 고맙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다른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허탈한 마음이 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 전 수석에게 ‘대기업 총수 사면’ 청탁이 쇄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이 공개한 안 전 수석의 문자메시지 내역에 따르면 2015년 8월 13일 김창근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하늘같은 이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고 산업보국에 앞장서 경제 살리기를 주도하겠다”며 “수석님 은혜 또한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SK 이모 팀장은 “오늘 조선일보 수뇌부와 만났는데 경제 활성화와 창조경제 위해 최(태원) 회장이 조속히 나와야 한다는 톤으로 내일자 사설을 게재해 주겠다고 했다. 한번 (사설을) 살펴봐 달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그해 8월 15일 광복절 특사로 사면됐다.

최씨가 미르·K스포츠재단과 더블루케이를 모두 지배하는 지주회사를 설립하려 한 증거자료도 공개됐다. 검찰은 류상영 전 더블루케이 과장이 갖고 있던 내부 문건을 공개하며 “최씨가 류 전 과장에게 ‘미르·K스포츠재단과 더블루케이를 총괄하는 지주회사를 설립해 보라’고 지시했다”며 “류 전 과장은 이후 ‘위드블루’ ‘인투리스’ ‘세온블루’라는 이름의 법인 3개를 구상해 보고했다”고 밝혔다.

최씨 소유의 미승빌딩 관리인이 청와대에 출입해 박근혜 대통령의 침실을 수리했다는 진술도 공개됐다. 미승빌딩 관리인 A씨는 “최씨가 청와대 침실에 손볼 게 있다며 가보라고 했다”며 “박 대통령이 ‘침실에 커튼을 걸고 샤워기 수도꼭지를 교체해 달라’고 직접 지시했었다”고 밝혔다.

한편 최씨 측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지적한 ‘인식의 동굴’에 검찰이 갇혀 있다”며 다소 황당한 변론을 펼쳤다. 이경재 변호사는 “21세기 한국 자유시장경제 주체들은 권력자의 요구에 무조건 응하거나 세무조사 위협 등에 흔들릴 정도로 취약하지 않다”고 말했다. ‘미르는 차은택, K스포츠는 고영태가 중심’이라며 책임을 떠넘기던 최씨는 재판 말미에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양민철 황인호 기자 liste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