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사법처리 땐 컨트롤타워 붕괴 ‘직격탄’

입력 2017-01-14 05:01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제기되자 삼성의 컨트롤타워 붕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은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지원하는 데 대가성이 없었다며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전장기업 하만(Harman) 인수와 갤럭시 S8 발표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특검 수사의 칼날이 삼성 수뇌부 전체를 겨누자 비상이 걸렸다.

삼성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삼성의 2인자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까지 사법처리되면 삼성을 이끌 사령탑이 사실상 무너지게 된다. 위기상황을 감지한 듯 이 부회장은 22시간의 고강도 조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서초사옥으로 향해 회의를 주재했다. 삼성 관계자는 13일 “(사태 장기화로) 경영전략 수립, 조직 개편, 투자 결정 등 중대한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있어 그룹 전체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며 “이 부회장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구속영장 청구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최씨 일가 지원에 대가성이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씨 딸 정유라씨를 지원한 데 대해서도 공갈이나 강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고 항변한다.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해서도 청와대나 최씨 등에게 지원을 부탁한 일이 없다고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은 대통령이 얘기하면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 대통령과 주고받기나 거래를 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며 “유무죄를 다투는 사안인데 영장을 청구하면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 대외 신인도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계속되는 수사로 삼성전자의 상반기 경영전략은 사실상 모두 멈춘 상태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중으로 갤럭시 노트7 사태를 반전시킬 갤럭시 S8 발표와 80억 달러(9조6000억원)에 달하는 하만 인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하지만 특검 수사로 공격적인 마케팅이나 적극적인 인수합병에 드라이브를 걸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기 사장단 인사와 임원 인사도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

이에 더해 하만 주주들은 합병에 반대하는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하만 주주들은 지난 3일 하만 경영진과 이사회가 회사 가치를 저평가해 불리한 인수를 추진했다며 미국 델라웨어주 형평법원에 집단 소송을 냈다. 앞서 하만의 주주인 미국계 헤지펀드도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혀 인수에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삼성은 트럼프 정부 출범이나 사드 보복 등 대외적 불확실성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앞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삼성전자가 중국에서 생산해 미국에 판매하는 세탁기에 대해 52.5%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며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도 점차 노골화되고, 더욱 광범위해지고 있다.

외신들은 이 부회장의 고강도 조사 상황을 일제히 다뤘다. 로이터통신은 “삼성그룹 전체가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에 속도를 내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삼성과 오너 일가가 투자자들 사이에서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부회장의 소환으로 그동안 상승해 온 삼성의 긍정적 이미지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경영권 승계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