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결로 분쟁’… 입주민 ‘부글’

입력 2017-01-14 05:00

직장인 김모(28·여)씨는 새해를 맞아 대청소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평소 침대 등 가구에 가려져 있던 창틀 주변 벽지가 시커멓게 곰팡이로 뒤덮여 있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창문에 물방울이 맺히는 결로 현상 때문이었다. 곰팡이는 다른 벽에도 점점 퍼지고 있었다.

김씨는 시공과정에서 단열재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빌딩 관리사무소 측에 문제를 제기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사비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였다. 김씨는 건물 하자가 의심됐지만 직접 뜯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 건물은 2012년에 지어져 하자담보책임기간인 2년도 이미 지났다. 입주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김씨는 화가 났지만 결국 돈을 들여 고치기로 했다.

김씨처럼 겨울만 되면 아파트, 빌라 등에서 결로 현상으로 인한 피해가 급증한다. 아파트 하자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는 지난 3년간 2293건의 조정신청이 접수됐다.

시공사의 단열재 공사 문제로 결로가 생길 경우 보수를 받거나 보상액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해결방법은 쉽지 않다. 민사소송을 제기해 몇 년간 법적공방을 하거나 분쟁조정위에 분쟁조정을 신청해 시공사의 잘못이라는 점을 입증 받아야 한다.

김씨처럼 이미 하자담보책임기간이 지나서 입주했을 경우 구제받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분쟁조정위 관계자도 “담보기간이 지난 건물에 입주하고 봤더니 하자가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지만 구제받기 어려운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8월 공동주택관리법을 개정해 결로 현상의 하자담보책임기간을 3년으로 확대했지만 이는 ‘2016년 준공 건물’부터 적용된다.

아파트 하자의 원인이 되는 불량 자재, 부적격 시공 등에도 처분은 가벼운 편이다. 국토부는 2015년부터 건설 현장에 불시 점검을 나가고 있다. 부적합한 건설 자재를 쓰는 현장을 적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적발된 업체는 대개 재시공, 1∼2개월간 업무 정지 등 행정처분에 그친다. 업무 정지 행정처분은 최고 6개월까지 가능하지만 아직까지 사례는 없다.

근본적으로 건설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최저가를 제시해야 사업을 낙찰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단가를 낮추려고 자격미달인 사람을 고용하거나 불량 건축자재를 사용하게 된다”며 “주거 환경의 건강·안전에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이제는 무조건 싸게 한다는 옛날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건설업 면허를 불법으로 빌려준다거나 무등록 건설업자에게 일감을 주는 등 각종 건설비리도 문제다. 매년 수백건씩 발생하는 건설비리는 아파트 하자뿐만 아니라 안전을 위협하는 부실공사로 이어질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5년에는 건설비리(건설산업기본법 위반) 822건을 적발해 1870명을 검거하고, 3명을 구속했다. 지난해에는 더 늘어난 1823건을 적발해 3713명을 검거하고 13명을 구속했다.

홍 교수는 “건설·설비에 전문 자격을 갖춘 설계·감리자가 실제 시공에 참여하는지를 철저하게 감독하고, 법을 어기는 시공사는 자격 박탈, 업체 폐쇄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