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벌거숭이같이 다 드러나는 ‘적나라’

입력 2017-01-14 05:01

옷을 죄다 벗어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를 이르는 말이 있지요. 벌거숭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적나라(赤裸裸)’입니다. 실상이나 감정이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나 더 이상 숨김이 없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赤은 大(클 대)와 火(불 화)가 합쳐진 글자로 붉다는 뜻입니다. 큰불이 활활 타면 붉은 모양을 띤다는 것이겠습니다. 큰불이 휩쓸고 가면 남는 게 없다는 뜻에서 赤은 ‘벌거숭이’나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도 있지요. 맨손에 맨주먹이란 뜻의 적수공권(赤手空拳)이 그 예입니다.

裸는 衣(옷 의) 자가 들어 있지요. 옷을 모두 벗다, 벌거숭이, 털이나 깃 등이 없는 동물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나목(裸木) 반라(半裸)처럼 쓰입니다.

‘적라라’를 ‘적나라’로 쓰는 이유는 ‘반복되는 한자어의 경우 첫 음절은 두음법칙에 따라 적고 두 번째 음절은 본음대로 적는다’는 한글 맞춤법 규정에 따른 것입니다. 몹시 무섭거나 두려워 몸이 벌벌 떨리다, 또 몸이 떨릴 정도로 감격스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전율’의 원말인 전전율률(戰戰慄慄)에서도 볼 수 있지요.

적나라는 옷을 벗는 정도가 아니라 ‘뼈까지 드러낸다’는 뜻의 노골(露骨)과 의미 상통하는 말입니다. 적나라나 노골이나 선을 넘으면 천박에 이르게 됩니다.

글=서완식 어문팀장,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