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노트] 감정의 온도

입력 2017-01-13 17:46
암병동 휴게실 창가의 개나리 꽃가지

쌀쌀한 날씨에 외로움까지 겹치면 “옆구리가 시려”라고 툭 내뱉게 된다. 그리고 충격을 받으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헤어지는 연인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 식어버렸어.” 뜨거운 분노와 싸늘한 배신, 훈훈한 감사와 뜨거운 우정처럼 감정에는 그 나름의 온도가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어쩌면 감정이란 온도계와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펄펄 끓어올랐다, 냉랭하게 얼어버리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도 오르락내리락하니까.

지난해에 눈길을 끄는 우울증 치료법 하나가 해외 유명 학술지에 소개된 적이 있다. 우울증 환자를 뜨거운 열기가 나오는 통 속에 넣고 심부 체온이 정상보다 1.5도 오를 때까지 있도록 했더니 항우울제를 복용한 것처럼 호전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 한 편의 연구 결과만으로 체온을 올리는 것이 우울증에 효과적인 치료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게는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일상에서 느꼈던 체험과 일치하는 연구 결과였기 때문이다.

나만의 우울 해소법은 몸을 뜨겁게 만드는 것이다. 기분이 처지면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근다. 그러면 의욕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활력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몸과 마음이 늘어지는 날은 아침 일찍, 그리고 저녁 늦게 두 번씩 목욕탕에 간다(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렇게 하는 건 아니다). 운동을 해도 땀이 흠뻑 날 정도로 해야 의욕이 끓어오른다. 몸에서 열기가 올라올 정도로 운동을 해야 이런 효과가 나온다. 마음이 무거우면 더 많이 뛰려고 애를 쓴다.

지금 내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 추운 겨울, 감성도 꽁꽁 얼어버린 건 아닐까? 그럴수록 몸을 뜨겁게 달궈야 한다. 몸으로 감정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햇볕을 더 많이 쬐고, 더 많이 움직이면 기분도 변한다. 나를 뜨겁게 달구는 일에 몸을 던져 넣으면 삶의 온도가 올라간다.

스산한 겨울, 옆구리마저 시리다면? 혼밥과 혼술이 아니라 사람들 곁으로 가야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만날 것이 아니라 얼굴을 보고 손을 잡고 체온을 나눠야 한다.

김병수(서울아산병원 정신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