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370장(통 455)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창세기 13장 5∼13절
말씀 : 땅을 바라보다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땅의 문제, 가난의 문제로 인해 하나님을 잊고 살다가 다시 하나님을 회복한 아브람이 이번엔 부유의 문제 앞에 섭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난이든 부유든 모든 문제 가운데 있던 12장의 아브람과 13장의 아브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삼촌으로서 얼마든지 조카 롯을 혼낼 수 있었고, 강압적으로 명령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땅만 바라봤다면, 소유만 생각했다면 그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브람은 땅에 관심이 없습니다. 아브람은 삶의 문제를, 갈등의 문제를 이제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봅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다투지 말자’(8절)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누구입니까. 다퉈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해야 할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아브람에게 왜 섭섭함이나 분노가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람에게 ‘롯은 싸워서는 안 될 친족’이라는 생각이 더 중요했습니다. 아브람은 애굽에 가서 땅의 문제, 가난의 문제,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 아내를 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맺어주신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땅보다 관계를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 갈림길에 서게 될 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브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도 그런 갈림길에 설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롬 8:5)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사람은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롯은 어떻습니까. 부모 없는 자신을 아들처럼 여기면서 돌봐준 삼촌입니다. 거기다 지금은 재산도 많아져서 부유한 삶도 누리고 있습니다. 롯은 삼촌 아브람에게 마땅히 “다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삼촌이 먼저 선택하셔야지, 제가 어떻게 먼저 선택하겠습니까”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롯은 갈만한 땅이 어딘지에 눈이 먼저 돌아갔습니다. 롯이 소알 땅을 보니 너무 좋았습니다. 가축들 먹이기에 좋은 땅입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0절)고 합니다. 그런데 롯은 왜 파멸의 땅으로 갔습니까. 이유는 보기에 좋은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롯은 그 땅이 목축하기에 좋은 것만 생각했지 그곳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지, 자녀들이 그 땅에서 얼마나 나쁜 영향을 받을 것인지, 영적으로 얼마나 손해를 볼 것인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13절)고 했습니다.
이사를 해도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곳으로 해야 합니다. 직장을 구해도 주일을 지킬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반드시 지키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브람과 롯의 선택은 그 기준의 중심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영적으로 고민한다면 그 결정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주신 교훈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결단의 용기를 허락하시옵소서. 보기에 좋은 결정보다 영적인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의 결정들이 내 삶 가운데 있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방일섭 목사(서울 두모갓교회)
[가정예배 365-1월 14일] 선택의 기로
입력 2017-01-13 21:12 수정 2017-01-13 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