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 기자회견 분량은 사전 예고됐던 것보다 훨씬 길었다. 반 전 총장 측은 당초 A4용지 두 장 분량의 소감문 초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하지만 반 전 총장 안주머니에서 나온 소감문은 그보다 대여섯 장 더 많았다. 반 전 총장은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앞에 마련된 임시 기자회견장에서 20여분간 발언을 쏟아냈다.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한 귀국 기자회견이었다. 전국에서 몰려든 반 전 총장 팬클럽이 그를 따라붙으며 소란스러운 장면도 연출됐다.
반 전 총장은 12일 오후 5시40분쯤 부인 유순택 여사와 함께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딧불이, 반사모 등 팬클럽 회원 300여명이 일제히 ‘반기문’을 연호했다. 반 전 총장은 “고맙습니다”라며 한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이어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여 귀국 소감을 밝혔다. 반 전 총장이 소감을 밝히는 도중 “반기문 만세” “나라를 구해주십시오” 등의 구호들이 지지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준비위’라는 명찰을 달고 흰색 목도리를 두른 대한민국반사모중앙회 회원들은 기자회견 진행을 자처했다. 반 전 총장이 회견장에 나타나기 직전에는 ‘세계반씨종친회’라는 단체 소속으로 소개된 한 남성이 단상 앞에 나와 마이크를 잡고 중국어로 발언했다.
반 전 총장은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 공항 편의점에서 물을 사고 공항 이곳저곳에서 시민들과 격의 없이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이어 서울역으로 가는 공항철도를 타고 이동했다. 승차권 발매기에서 부인 유순택 여사와 자신의 승차권 두 장을 사며 “뉴욕보다 간편하네”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의 이동 과정에서 지지자들과 경호원 등이 뒤엉키며 소란스러운 상황은 계속됐고, 반 전 총장의 양복 단추가 떨어지는 사고도 일어났다. 다만 많은 지지자들과 취재진이 몰려들어 지하철에서 시민과 대화하려던 당초 취지는 살리지 못했다. 반 전 총장은 촛불집회에 대한 기자들 질문에 “100만명이 모였는데 경찰과 불상사가 없었고 부상자도 없었다”며 “사무총장 재직 때 ‘이런 건 잘하고 있지 않느냐’고 (촛불집회를) 은연중 자랑스럽게 얘기했다”고도 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도 지지자 수백명이 모여들었다. 반 전 총장은 당초 예정했던 서울역 국군장병라운지 등을 방문하지 못했다. 반 전 총장은 오후 8시30분쯤 사당동 자택에 도착했다. 아파트 단지 앞에는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통일을 위해, 화합을 위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 사당동이 지역구인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도 환영식에 참석했다. 반 전 총장은 “정유년은 닭띠의 해다. 새벽을 울린다”며 “새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듯 새아침을 이루는데 사당동 주민들과 같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이 공항에 내려 자택에 도착할 때까지는 3시간30분가량 걸렸다.
인천공항=김경택 기자, 권지혜 기자 ptyx@kmib.co.kr
당초 A4용지 2장 분량 소감문 20여분 늘려 발언 쏟아내
입력 2017-01-12 21:45 수정 2017-01-13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