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진보 성향 세계적 석학 제프리 삭스… ‘중도 글로벌 리더’ 반기문 부각

입력 2017-01-13 05:20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총장 재임 시절인 지난 2015년 5월 2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유엔아카데믹임팩트(UNAI) 서울포럼에서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와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세계적 경제학자인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가 이번 대선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주요 조언자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삭스 교수는 반 전 총장에게 한국병 치유를 위한 처방전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삭스 교수가 이번 대선에서 최고의 책사가 될지, 단순한 볼거리로 전락할지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한국 대선에서 외국인이 특정 후보를 돕고 나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 금융계의 거대 투자자 조지 소로스, 알 왈리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가수 마이클 잭슨 등과 접촉했던 사례는 있다. 하지만 이들이 김대중 후보의 당선에 도움을 주긴 했지만 경제·사회 정책의 조언자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김 후보 측도 외환위기 극복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들을 적절히 활용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반 전 총장의 핵심 인사는 12일 “삭스 교수가 반 전 총장 대선 전략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며 “진보 성향의 삭스 교수가 얼굴 마담이 아니라 조언자로서 확실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 전 총장이 추구하는 ‘글로벌 리더’, ‘중도 성향’을 모두 상징하는 인물이 삭스 교수라는 얘기다.

특히 삭스 교수가 다루는 ‘부의 불평등’, ‘부의 집중’은 양극화에 시달리는 한국도 앓고 있는 문제다. 다른 인사는 “한국병 치료를 위해 세계적 명의(名醫)를 모셔온 것”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삭스 교수도 반 전 총장을 돕는 일에 적극적이다. 그는 지난 4일 한국 기자들로부터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반 전 총장은 세계에 크게 기여했다”며 “한국은 반 전 총장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반 전 총장은 삭스 교수의 지원이 효과를 발휘할 경우 더 큰 역할을 맡길 것으로 예상된다. 한 측근 인사는 “삭스 교수가 상황에 따라 한국에 오래 머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삭스 교수를 유엔 사무총장 특별자문관으로 기용하기 전부터 알고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1954년생으로 63세인 삭스 교수는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같은 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최연소 정교수를 기록한 뒤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로 옮겼다. 경제개발이 전공인 그는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에서 경제고문을 지냈다.

삭스 교수는 또 유엔이 세계 절대빈곤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채택한 ‘밀레니엄 개발목표’의 설계자로 유명하다. 밀레니엄 개발목표는 단순한 기아 퇴치뿐 아니라 여성, 보건, 교육, 환경 문제 등 광범위한 의제를 다뤘다. 반 전 총장 측 인사는 “삭스 교수는 경제만 아는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활약이 더욱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 전 총장도 외국에 10년 동안 머물면서 한국 실정에 어두운데 석학이라는 이름만 믿고 외국인에게 한국병 치유를 맡겨도 되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