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좋은 모습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입력 2017-01-12 17:35 수정 2017-01-12 21:1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받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있다. 그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지원을 받는 대가로 최순실씨 일가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서영희 기자

12일 오전 9시26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탄 검은색 체어맨 승용차가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 주차장에 들어섰다. 주차장 주변은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반도체 노동자 인권단체(반올림) 회원 등의 고성으로 가득 찼다. 피의자 신분으로 8년10개월 만에 특검에 불려나온 이 부회장은 포토라인에 서서 “이번 일로 저희가 좋은 모습을 못 보여드려 정말 송구스럽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지난달 청문회 자리에서처럼 희미한 웃음을 띠기도 했지만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취재진이 “국민들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경영권 승계에 이용한 것 아니냐”고 질문했지만 답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이날 특검팀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대치동 대치빌딩으로 불려나와 다음날 새벽까지 조사받았다. 박영수 특별검사와의 면담 절차 없이 곧바로 피의자 신문이 시작됐다. 19층 영상녹화조사실 안 4명이 앉을 수 있는 사각형 책상에서 조사가 진행됐다. 대기업 수사 전문가로 꼽히는 한동훈 부장검사와 김영철 검사가 번갈아 가면서 이 부회장을 신문했다. 조사실의 한 벽면은 가로 2m, 세로 1m쯤 되는 특수유리로 돼 있다. 안쪽에서는 거울로 보이지만 반대편에서는 조사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양재식 특검보가 특수유리 반대편에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지켜보며 조사를 지휘했다. 박영수 특검도 밤늦게까지 이 부회장 조사 상황을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 과정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호칭은 ‘피의자’로 불렸다고 한다. 이 부회장은 점심식사로 6000원짜리 도시락을 먹었고 저녁은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최순실 게이트’ 특검팀이 재벌 총수를 소환해 조사한 건 이 부회장이 처음이다. 이날 오전 8시30분부터 취재진, 시민단체, 경찰 등 300여명이 대치빌딩 주변에 몰렸다. 이 부회장의 차량이 들어오는 테헤란로부터 빌딩 주차장까지 200m 거리에 경찰 병력이 약 10m 간격으로 도열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오전 9시16분쯤 서초사옥에서 출발한 이 부회장은 10분 만에 특검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 부회장이 차량에서 내리자 시민단체 회원들은 ‘국민연금 강탈 이재용 구속’ 등의 피켓을 들고 우르르 몰려나왔다. 일부 정의당 당원들은 얼굴에 박근혜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가면을 쓰고,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 시민단체 회원은 “정유라한테 말을 사준 삼성전자는 삼마(三馬)전자냐”고 조롱하기도 했다. 취재진은 “이 부회장의 범죄냐. 삼성 임직원들의 범죄냐” 등 8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이 부회장은 답하지 않았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임직원 10여명이 대치빌딩 주차장에서 이 부회장의 출석 모습을 지켜봤다. 특검의 칼날을 막기 위해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 조사 직전까지 법리 검토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이 부회장 조사에는 대전지검 특수부장, 저축은행 합동수사단 팀장 등을 거쳤던 법무법인 태평양 이정호 변호사가 동행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등을 지낸 오광수 변호사도 변호인단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특검 조사에서 2015년 7월 25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 이전 최씨 모녀에 대한 승마협회 지원 논의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승마협회 회장)도 이날 소환해 이 부회장과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는지 조사했다.

글=나성원 기자 naa@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