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손’ 윤봉우, 네트위서 짜릿한 ‘블로킹 쇼’

입력 2017-01-12 21:24 수정 2017-01-12 21:37
한국전력의 베테랑 센터 윤봉우(왼쪽)가 지난 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6-2017 V리그 남자부 우리카드와의 경기에서 나경복의 스파이크를 블로킹하고 있다. 프로배구연맹 제공

베테랑 센터 윤봉우(35·한국전력)의 블로킹은 타이밍이 절묘하다. 상대 세터와 공격수의 움직임에 반응해 ‘거미손’을 펼친다. 블로킹에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것 같다. “방신봉(42·한국전력) 선배야말로 천재형 블로커라고 할 수 있죠. 전 아닙니다. 비디오 분석과 ‘데이터 발리’라는 전력 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상대 세터와 공격수의 습관을 파악한 덕분에 타이밍을 잘 맞출 수 있게 됐어요.” 윤봉우는 스스로를 노력형 블로커라고 했다. 지난 시즌 한물갔다는 소리를 들은 그는 이번 시즌 짜릿한 ‘블로킹 쇼’를 펼치며 제2의 전성기를 열고 있다.

블로킹으로 V-리그를 주름잡던 윤봉우는 2015년 5월 무릎 수술을 받은 뒤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2015-2016 시즌을 앞두고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결국 최민호, 신영석 등 쟁쟁한 후배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플레잉코치로 변신해 백업으로 활약했다. 자연스럽게 벤치를 지킬 때가 많았다. 기록은 곤두박질쳤다. 29경기 52세트에 나서 28득점에 그쳤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현대캐피탈은 그에게 코치직을 제안했다. 사실 그는 선수로서 이룰 것은 다 이뤘다. V-리그 챔피언의 기쁨도 맛봤고,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도 경험해 봤다. 하지만 현역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윤봉우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았다. “현대캐피탈에서 제안한 코치직을 거절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왜 이렇게 좋은 기회를 차 버리느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코트 안이라는 생각이 확고했어요.”

2003년 입단해 계속 몸담았던 현대캐피탈을 떠나 지난해 6월 한국전력에 둥지를 튼 윤봉우는 선수로 회춘해 펄펄 날고 있다. 12일 현재 블로킹 부문 1위(22경기 블로킹 65득점·세트당 평균 0.71개)에 이름을 올렸다. 비결은 바로 이탈리아에서 개발된 데이터 발리다. 그는 10년 전 사비 500만원을 들여 이 프로그램을 구입했다. “당시 팀 내 이탈리아 전력분석관에게서 사용법을 배워 지금까지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나만의 비밀무기라고 할 수 있죠. 미리 상대의 공격 패턴을 분석한 뒤 경기 때 블로킹으로 스파이크를 막아내면 정말 짜릿해요.”

높이를 강화해야 했던 신영철 한국전력 감독은 윤봉우에게 주전 센터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윤봉우는 블로킹뿐만 아니라 174득점, 공격성공률 55.38%를 기록하며 전방위에 걸쳐 맹활약하고 있다. 윤봉우는 한국전력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된 것이 좋은 성적을 올리는 이유라고 했다. “이번 시즌이 시작되기 전 신 감독님이 몸 관리만 잘하면 이번 시즌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전 감각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반신반의했어요. 하지만 감독님과 동료들이 절 믿어 주니 재기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한국전력은 윤봉우의 활약에 힘입어 12일 현재 15승7패(승점 39)로 3위를 달리고 있다.

윤봉우는 아직도 3∼4주에 한 번씩 무릎에 윤활제 주사를 맞으며 뛰고 있다. 하지만 경기장을 찾아 자신을 응원하는 5세, 3세인 두 아들을 생각하면 아픈 줄도 모른다고 했다. “첫째 승후는 이제 말을 곧잘 하는데, 경기장에서 자기한테 사인볼을 던져 달라고 해요. 하하하. 애들이 보는 앞에서 경기를 할 수 있는 지금이 참 행복해요.”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