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내렴의 성화 묵상] 새벽 닭 울음, 각성과 참회의 순간

입력 2017-01-20 19:35
베드로의 부인(否認) 안톤 로버트 라인베버(1845∼1921)/ 14×8.9㎝ 엽서/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금빛내렴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거짓과 배반과 은폐의 시대. 곁불을 쬐던 그는 진실을 탐색하는 이들의 질문을 황급히 회피한다. 그때 경종의 소리로 닭이 크게 운다. 그 새벽 닭 울음소리가 내면을 찌른다. 그리하여 그는 통곡하며 자책한다. 자만감이 자괴감으로 바뀌는 건 한 순간.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는 그에게, 우리에게 너무 자신만만하지 말라고 경고한 바 있지 않던가. ‘베드로의 부인(否認)’은 그림 형제의 동화집 삽화에 참여했으며, 수많은 성경 삽화를 제작한 체코 출신의 독일 화가 안톤 로버트 라인베버의 그림이다. 이 작품은 현재 서양에서 여러 크기의 액자용 포스터로 제작돼 판매되고 있다. 성경 이야기에 삽입된 그림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히 언제 그렸는지는 알 수 없다. 화가의 사망 이전인 1900년대 초반으로 추정할 뿐.

간명하지만 영리한 구도는 오히려 많은 생각을 제공해 주고 있다. 화면 구성은 관객의 시선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아래에서 위로 향하게 한다. 왼쪽 한 귀퉁이에서 모닥불을 쬐는 이들은 여전히 긴가민가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그들보다 오른쪽 높은 곳에서 목을 곧추세운 닭의 모습은 공감각적으로 “꼬끼오” 하는 커다란 울음소리를 우리 귀에 들려준다. 왼쪽의 사람들이 저 멀리 작게 표현된 반면 그들을 피해 박차고 나온 베드로는 화면 가운데 커다랗게 부각돼 있다. 그는 몸을 구부리고 어쩔 줄 몰라 당황한 듯 정지한 모습이다. 아무 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듯 오른 손은 허공에 편 채 멈추고, 왼 손은 얼굴 전체를 감싸고 있다. 우리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으나 그의 표정이 어떠할지 유추할 수 있다. 왼손으로 감춰진 얼굴에 가득한 회한과 부끄러움을 읽는다. 오직 그의 그림자만이 떨림을 드러내고 있다. 불명확하고 흐트러진 그림자의 윤곽선들은 참회의 오열로 인해 온몸이 들썩이고 있음을 보여 준다. 화면 오른쪽의 여백은 그림 속 그에게, 그리고 관객인 우리에게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 상태로 머물 수만은 없다.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어느 길을 취할 것인가. 우리는 복음서들을 통해 베드로의 이후 행적을 알고 있다. 이제 우리들 차례다.

혹시 첫 번째 닭 울음소리에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뒤척이고 있는가. 두 번째 기회가 있다. 다른 복음서의 평행본문들에서는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고 표기돼 있지만 유독 마가복음서에서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라고 기록돼 있다(막 14:30, 72). 이는 우리에게 한 번 더 각성의 기회가 있음을 강조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 첫 번째 울음소리를 놓쳤을지 모르지만 두 번째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두 번째 닭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들여다봐야 할 때. 새로운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정유년(丁酉年)이 다가왔다. 암탉이 날개 아래 병아리를 품음같이 그분이 우리를 품을 것이다. 그분의 날개, 그분의 뜻과 정신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온전히 이 한 해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금빛내렴<미학자>

약력=△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졸업(철학박사) △한국미학예술학회 총무간사 △상명대디자인연구소 연구원 △현재 기독인문학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