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펭귄이 소리를 버럭 지른다. 깜짝 놀란 아이는 그만 산산조각이 난다. 조각난 아기 펭귄은 온 세상으로 흩어진다. 머리는 우주, 몸뚱이는 바다, 날개는 밀림, 부리는 산꼭대기, 꼬리는 도시 한가운데로. 다리는 몸을 찾아 헤매다가 사막까지 간다. 절망 가운데 드리워지는 그림자. 하늘에 큰 배가 떠 있고 엄마가 그 안에서 다른 조각들을 찾아 꿰매고 있었고, 다리까지 합해 아이를 다시 완성한 뒤 말한다. 미안해. ‘고함쟁이 엄마’라는 그림책이다.
이 책에 대한 반응은 잔인하다, 무섭다가 우선이다. 그 다음에 엄마의 고함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공포인지, 엄마의 무마와 사과가 얼마나 다행인지가 나온다. 하늘의 배를 노아의 방주로, 엄마를 구원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모두 타당한 반응이지만 내게는 이렇게도 읽힌다. 엄마의 고함은 아이의 변화와 성장을 위한 동력이다. 낯선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며 울고불고 할 때는 부드럽게 타이르는 말도 아이에게는 고함 같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품안에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는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엄마의 고함이 아니었다면 아이가 다양한 세상을 섭렵할 수 있었을까. 북적거리는 도시에서부터 도마뱀만이 쏜살같이 나를 스쳐가는 텅 빈 모래언덕까지, 거울 같던 물이 산처럼 일어서서 나를 삼키려 드는 바다에서부터 황홀한 별이 반짝이지만 숨은 쉴 수 없는 우주까지. 자아를 잃어버린 채 사막을 헤매는 것처럼 보여도 아기 펭귄은 사실 이렇게 깊고 넓은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닐까.
그 길은 힘겹고 외롭고 절망적일 것이다. 저 위에서 엄마가 나를 찾아내 완성해준다는 확신이 없으면 말이다. 얼핏 황당하고 끔찍해 보일 수도 있는 이 책은 그런 전망을 준다. 나는 언제든 해체돼 헤맬 수 있으며, 그 과정의 끝에 새로 태어난다. 나를 세상에 내보낸 존재와 화해할 수 있다. 그뿐인가, 함께 높이 올라 새로운 곳으로 항해한다. 고난과 절망 없이는 그런 위로의 전망이 있을 수 없으니, 엄마는 아이가 무서워하는 일을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고함쟁이 엄마 펭귄은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엄마가 고함칠 때
입력 2017-01-12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