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삶] 갈색 달걀, 흰색 달걀

입력 2017-01-12 18:50
단백질 공급원 달걀

나는 경상도 창녕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부모님과 할머니, 위로는 두 형과 누나 셋, 아래로는 동생 그리고 착한 암소와 여러 마리의 닭과 양순한 개 한 마리, 마릿수를 알 수 없는 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대가족이었다. 식구들의 단백질 공급원은 단연 달걀이었지만 언제나 마음껏 먹기가 쉽지 않았다. 멀리서 손님이 오는 날에나 찐 달걀을 몇 알 먹어볼 만치 귀한 음식 또한 달걀이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흰색 달걀을 더 많이 소비하고, 우리나라와 영국은 대부분 갈색이다. 한때 그 흔하던 흰색 달걀이 자취를 감추고 갈색 달걀이 대중을 이룬 이면에는 아마도 신토불이 바람이 불었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뉴햄프셔 품종의 갈색 닭이 마치 토종닭인 양 군림하면서 레그혼 같은 흰색 닭들이 사라졌다. 갈색 닭은 갈색 달걀을 낳고, 흰색 닭은 흰색 달걀을 낳는다. 그래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검은 개가 하얀 개보다 사나워 보인다. 갈색이나 검정 깃털을 가진 닭이 흰색 닭보다 강해 보이게 마련이라 싸움닭은 대체로 검붉은 색이다. 어릴 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흰색 닭이 갈색 닭보다 더 양순하다. 사료도 적게 먹는다. 덩치도 작고 달걀껍질 또한 얇다. 미각이 예민한 사람들은 흰색 달걀이 비린 맛도 덜하다고 한다.

농업혁명은 인류의 삶을 바꾸는 원동력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사육하는 닭은 1억5000만 마리, 1인 3닭이다. 250억 마리의 닭이 70억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 모래목욕을 하고 둥지를 틀고 횃대에 오르던 닭들은 이제 한 마리당 A4용지(210×297㎜)보다 좁은 공간에서 대량으로 사육된다.

사위가 오면 귀한 씨암탉 잡는다는 말은 옛일이 되었다. 전화 한 통화로 ‘치킨’을 배달시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자본주의의 풍요는 전염병 하나로 초토화될 수도 있다. 이제 닭은 생명체가 아니라 생산품이다. 지천으로 흔해서 그럴까? 오늘 먹어보는 찐 달걀은 어릴 적 그 맛이 아니다.

성기혁(경복대 교수·시각디자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