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 뮤지컬에 남녀 로맨스가 돌아왔다

입력 2017-01-13 00:04 수정 2017-01-13 00:43
‘키다리 아저씨’ 달컴퍼니 제공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어쩌면 해피엔딩’ 대명문화공장 제공
자극적인 소재와 브로맨스(bromance·남자들끼리 갖는 두텁고 친밀한 관계)가 주도하던 소극장 뮤지컬에 따뜻하고 감성적인 남녀 로맨스가 돌아왔다.

2007년 뮤지컬 ‘쓰릴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후 국내 소극장 뮤지컬의 흥행 공식은 남자배우 2명을 중심으로 한 스릴러물이었다. 뮤지컬 시장의 주소비층인 20∼30대 여성 관객이 선호한다는 이유로 제작자나 창작자들은 여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을 꺼려했을 정도다.

하지만 지난해 ‘키다리 아저씨’를 시작으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어쩌면 해피엔딩’은 모두 남녀 간의 사랑을 앞세우고도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키다리 아저씨’는 독특한 2인극 형태의 로맨틱 코미디였고, 시인 백석과 기생 자야의 사랑을 그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애절한 사랑의 아픔을 시와 함께 담았다.

미국 뉴욕에서 영어 버전 워크숍을 마치고 온 ‘어쩌면 해피엔딩’은 사랑을 시작한 로봇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풀어냈다. 또 지난 10일 개막한 2016 창작산실 우수신작 ‘레드북’은 중극장 뮤지컬로 19세기 보수적인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남녀의 재기발랄한 로맨스를 다뤘다.

이에 대해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순천향대 교수)씨는 공연 시장의 흐름을 보면 순환적 주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스펙터클한 뮤지컬이 한동안 유행한 뒤에는 반대급부로 작고 밀도 있는 뮤지컬이 유행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국내에서 대극장 뮤지컬이 강세를 이어가면서 소극장에서는 자극적인 소재나 브로맨스를 다룬 뮤지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며 “그런데 최근 대극장 뮤지컬이 재공연이나 반복적인 스타 캐스팅 등으로 다소 시들해지면서 관객들이 소극장 뮤지컬에 눈을 돌리게 됐다. 소극장에서는 그동안의 흐름과 달리 참신하고 감동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이 나올 확률이 높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뮤지컬 칼럼니스트 조용신씨 역시 “그동안 소극장 뮤지컬에서 브로맨스 소재가 공급 과잉인 측면이 있었다. 게다가 유리아 이지숙 최연우 등 그동안 남남 콤비 때문에 가려져 있었던 괜찮은 여배우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관객들이 이들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면서 “소극장 뮤지컬은 온전히 배우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제작자와 창작자가 이제 여배우들을 내세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