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던 ‘나주 여고생 성폭행 살인사건’의 진실이 수사 당국의 끈질긴 추적과 ‘태완이법’에 힘입어 16년 만에 밝혀졌다.
광주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강영훈)는 11일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강간 등 살인)로 구속 기소된 김모(39)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20년간 위치추적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이는 지난해 종전 15년이던 살인죄 공소시효를 없앤 ‘태완이법(형사소송법 개정)’의 시행 이후 첫 유죄판결이다.
재판부는 “당시 17세에 불과한 피해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것은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고 반성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극악한 범죄에 경종을 울리고 사회와 격리시켜야 한다”며 김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김씨는 2001년 2월 4일 새벽 시간 드들강변에서 당시 여고 2년생인 박모(17)양을 성폭행한 뒤 목 졸라 강물에 빠뜨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뚜렷한 증거나 목격자가 없어 장기 미제사건으로 분류됐다.
사람들 뇌리에서 잊혀진 이 사건은 2012년 극적인 전환점을 맞게 된다. 대검찰청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 박양의 체내에서 검출된 체액과 일치하는 DNA를 가진 사람이 나타난 것. 장본인은 목포교도소에서 강도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김씨였다.
검찰은 DNA를 근거로 재수사에 나서 다시 기소했지만 직접적 물증이 없는 데다 김씨가 범행을 극구 부인해 증거 불충분으로 2014년 무혐의 처분됐다.
하지만 검찰은 ‘태완이법’ 시행으로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되자 2015년 재수사에 나섰다. 검경은 수사기록을 재검토하고 법의학자와 범죄심리학자 등을 참여시켜 집요하게 사건을 파헤치던 중 범행 직후 김씨가 행적을 조작하기 위해 찍은 사진 7장 등 추가 증거를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8월 김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법 혐의로 기소했고 결국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김씨는 현재 금괴 판매를 미끼로 두 명의 남성을 살해한 혐의(강도 살인)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동안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한 박양의 어머니 최모(60)씨는 “지난해 딸의 34회 생일날 검찰이 김씨를 다시 기소한다는 전화를 받고 한참 울었다”며 “미처 꽃피우지 못하고 숨진 딸의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풀렸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16년 만에 밝혀진 진실, 피해자 恨 풀었다
입력 2017-01-11 17:42 수정 2017-01-11 2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