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49·용인 순복음늘푸른교회) 감독이 까만 목탄을 묻힌 손으로 2m 높이의 캔버스를 훑었다. 손가락으로 비벼 질감을 입히니 예수님이 열두 제자와 최후의 만찬을 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림에 특수효과로 색을 넣으면 객석에선 탄성이 쏟아진다. 김 감독이 2007년 6월 세상에 처음 선보인 ‘드로잉쇼’다.
6일 서울 연남동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드로잉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화가가 가장 기쁜 순간은 완성된 그림을 전시장에 걸어놓을 때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에요. 화가가 행복을 느끼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바로 드로잉쇼입니다.”
“얼씨구, 쇼하고 있네.”
김 감독은 초등학교 운동회 때 계주 선수로 나갔다. 그런데 바통을 넘겨받자마자 반대방향으로 내달렸다. 선생이고 학생이고 할 것 없이 다들 뒤집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엉뚱한 행동과 새로운 발상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줬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했다. 친구들을 모아놓고 그림을 그린 도화지를 넘겨가며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그러나 미술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림이 지겨워졌다. 교수가 돼 대학 강단에 섰는데 한 학생이 “교수님처럼 되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춤을 추며 그렸다. 옆에 있던 다른 교수가 한마디 했다. “얼씨구, 쇼하고 있네.” 이 말을 듣는 순간 김 감독은 계주를 뛸 때처럼 엉뚱한 생각을 했다. ‘진짜 쇼를 하면 행복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겠구나!’
김 감독은 이때부터 드로잉쇼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결국 공황장애가 왔다. 무서운 환상이 보였고 그러면 김 감독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었다. 갑자기 심장이 마비돼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다. 이렇게 살 바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이때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교회를 찾아가 기도했다.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날 운전을 하며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 누군가 저를 안아주듯 두 팔을 벌리는 형상이 보였어요. 분명 예수님이었죠.” 예수님은 이렇게 기적같이 김 감독에게 다가왔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김 감독의 누나는 동생의 회심을 위한 기도일기를 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쓰고 있었다. 그리고 들려온 주님의 음성. ‘네게 준 재능으로 내 모습을 세상에 알려라.’
김 감독은 준비하던 작품의 콘셉트를 ‘크라이스트 드로잉쇼’로 바꿨다. 천지창조에서 예수님의 부활까지 성경에 담긴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기존 투자자들은 투자를 포기했고 직원들의 반발도 심했지만 이렇게 시작한 크라이스트 드로잉쇼는 벌써 10년째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20만명이 넘는 관객이 공연장을 찾아갔다.
2013년 울산 야외공연장에서 크라이스트 드로잉쇼를 하는데 흰 나방이 캔버스에 잔뜩 달라붙었다. 김 감독은 나방들을 쫓으려고 손을 휘둘렀다. 관객들이 퍼포먼스인 줄 알고 “와”하고 함성을 질렀다. 흰 나방 떼가 한꺼번에 날아가자 더 큰 함성이 터졌다. 공연이 끝나고 한 관객은 김 감독에게 “특히 흰 천사가 날개 짓하며 날아가는 장면이 감격스러웠다”고 전했다. “나방 때문에 공연을 하는 게 힘들었는데 하나님은 이걸로 관객들에겐 더 큰 감동을 주시더라고요(웃음).”
주님의 붓
그는 기독문화가 교회 안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복음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올해부터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서울 충무로 명보아트홀(명보극장)에서 공연을 할 계획이다. 세계 투어도 추진하고 있다. ‘크라이스트 드로잉쇼’는 그림으로 하는 공연이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을 넘어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에게 빠르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을 가르칠 계획도 구상 중이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장면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드로잉쇼를 시작했다던 김 감독에게 “요즘은 어떠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숨을 쉬는 것, 음식을 먹는 것, 움직이는 것 이 모든 게 다 행복한 건데 그땐 그걸 몰랐던 거죠. 당장 오늘 일어나는 행복도 감당을 못하겠어요.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동안 저에게 사명이 있다면 공연을 한번이라도 더 해서 지금 울고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알 수 있도록 전하는 것이에요. 저는 이런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주님의 붓’이기 때문이죠.”
글=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사진=김보연 인턴기자
“나는 주님의 붓… 그림 그리는 공연으로 예수님 전해요”
입력 2017-01-12 2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