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국가 무시한 압박… 中 ‘힘의 횡포’

입력 2017-01-10 17:52 수정 2017-01-10 21:42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한반도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압박 수위가 앞으로 계속 높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이 우리 측의 사드 배치 진행 상황에 대한 보복조치를 수립해놓고 단계별로 사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처럼 도를 넘어선 중국의 압박 행태는 주권 국가의 안보 결정 사안을 무시하는 ‘폭거’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군은 전날 발생한 중국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 의도를 정밀분석 중이라고 10일 밝혔다. 중국은 ‘훈련 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10여대가 대거 침범하는 상황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군 당국은 중국 군용기가 KADIZ뿐 아니라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도 침범해 일단 한국만 겨냥한 ‘무력시위’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20일로 예정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남·동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한 중국의 확고한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무력시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중국 군용기가 침범한 지역은 한·중·일 방공식별구역이 중첩된 곳이다. 지난 2013년 중국은 일방적으로 자국 방공식별구역(CADIZ)을 확대해 이어도 수역 상공을 포함시켰다. 정부도 이에 대응, 62년 만에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해 우리 영토인 마라도와 홍도 상공, 이어도 수역 상공을 포함시켰다. 일본은 1969년 JADIZ 확정 시 이어도 상공을 포함시켰다. 그간 문제는 없었다.

중국은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고도 분쟁 소지가 커진 이 지역에 대한 비행을 자제해왔지만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 정부의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지난해 7월 8일) 이후인 8월 2일부터 중국 군용기가 우리 측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한 횟수가 수십 차례로 부쩍 잦아졌다.

중국은 또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보복 조치로 한국과 군사교류·협력을 전면 중단했다. 한·미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발표 이틀 만인 지난해 7월 10일 중국 국방대학교 대교반(사단장급)의 학생대표단 방한이 전격 취소됐다. 지난해 예정됐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중국 방문 협의는 진행조차 되지 않았다. 중국의 이런 압박은 대통령 선거 전까지 단계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의 거친 압박은 적지 않은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사드 배치는 한층 고도화된 북한의 핵 위협에 직면한 한국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자위적 방어조치다. 그런데도 중국은 원인 제공자인 북한을 압박하기는커녕 사드 배치가 ‘중국의 전략적 이해’에 반한다는 이유만으로 반대하고 있다. 중국은 전략적 이익이 무엇인지도 설명하지 않고 있다. 사드 레이더가 중국 군시설을 탐지한다는 게 중국 측 주장이지만 중국은 북한과 인접한 국경지대에 한국군과 주한미군 기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강력한 레이더를 배치해놓고 있다.

‘강대국’이 된 중국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상충되는 주변국을 압박하는 전근대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사드 문제는 중국과 협의할 사안이 아니다”며 “주권국가의 생존이 달린 안보 문제를 다른 나라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국책 연구원의 한 중국 전문가도 “중국의 과도한 압박은 한국 내 여론을 악화시켜 한·미·일 3각 공조 강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이 군사적 사안을 놓고 경제·문화 전반에 과도한 규제를 한다면 한국으로서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동북아 역내에서 크게 우려하는 한·미·일 3각 공조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국제 여론도 부정적으로 돌아서고 있다. 권위 있는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군사적 압박은 물론 경제 전반을 압박하고 있는 중국의 행태가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