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로 경영권 뺏은 후 회사돈 빼돌려… 멀쩡한 기업 ‘깡통’ 만든 조폭들

입력 2017-01-10 18:30
지난해 1월 강남 한복판에 수배 전단이 나돌았다. 조직폭력배 사채업자 이모(46)씨가 흉악범 사진 대신 채무자의 사진을 넣어 만든 가짜 전단이었다. 채무자가 대기업 계열사 대표를 지냈고 정당 활동까지 했음을 알고 채무 변제 압박을 위해 벌인 일이었다. 그는 이 같은 고리사채업을 통한 자금동원력을 바탕으로 무자본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멀쩡한 회사를 통째로 삼켜 왔다.

이씨는 2012년 6월 코스닥 상장사인 식품제조업체 A사 대표에게 사채 자금 80억원을 빌려주면서 담보로 회사 주식 800만주를 넘겨받아 A사 경영권을 확보했다. 그는 ‘작전세력’과 함께 시세조종과 허위공시 등으로 주가를 올린 뒤 주식을 매매하는 수법으로 24억원 상당의 이득을 취했다. A사가 보유 중이던 부동산을 매각해 17억원의 회사자금을 빼돌리기도 했다.

이씨는 이 같은 사실이 회계 감사 과정에서 드러날 것을 우려해 외부감사법인 대표 박모(60)씨에게 2000만원을 건네고 20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했다. 박씨는 이씨 등의 불법을 눈감아줬다. A사는 결국 상장폐지됐다.

또 다른 조직폭력배 김모(38)씨도 이씨와 비슷한 방식으로 기업을 인수, 기업 돈을 마치 개인 지갑처럼 사용했다. 그는 2009년 기업사냥꾼 등과 공모해 저축은행 대출과 사채자금을 끌어모아 코스닥 상장 기업을 인수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조카사위가 연루됐던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의 피해기업 씨모텍이었다.

김씨는 가짜 사업계획서를 발표하고 유상증자를 통해 일반 투자자로부터 286억원을 끌어모았다. 150억원 상당의 전환사채도 발행했다. 이렇게 모은 돈은 경영권 인수에 소요된 대출금 및 사채자금 변제 등에 사용됐다. 그는 같은 방법으로 J사 또한 인수했다. 그러나 ‘돌려막기’ 식으로 자금을 융통하다 2011년 모두 상장폐지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이용일)는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이씨와 김씨 등 5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10일 밝혔다. 조폭 경영진의 각종 비위 행위를 눈감아준 회계사 박씨를 비롯해 인수·합병에 관여한 전문 작전세력 등 1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