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죄를 추적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의 문고리 앞까지 다다랐다. 특검은 9일 삼성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수뇌부 두 사람을 동시에 불렀다. 사실상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혐의를 인정할 건지를 묻는 통첩을 보낸 것이다.
삼성의 2인자 최지성(66)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은 오전 9시50분쯤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로 출석했다. 이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장충기(63)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은 그보다 15분 먼저 나왔다. 두 사람은 쏟아지는 취재진 질문에 한마디 답변 없이 조사실로 향했다. 특검의 삼성 미래전략실 고위 임원 공개 소환은 처음으로, 이 부회장 조사가 임박했음을 뜻한다. 특검 관계자는 “두 사람이 (뇌물공여) 피의자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특검은 이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등 삼성의 경영권 승계 지원을 매개로 한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 간의 뇌물죄 구조 밑그림을 상당부분 완성한 상태다. 삼성의 최순실(61·구속 기소)씨 일가 지원은 미래전략실 차원에서 계획·결정돼 실행에 옮겨진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은 최 부회장 등을 상대로 제3자 뇌물 혐의의 구성 요건인 ‘부정한 청탁’이 존재했는지를 집중 추궁했다.
삼성은 승마선수인 최씨 딸 정유라(21)씨 지원을 위해 2015년 8월 최씨가 독일 현지에 세운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와 22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모두 80억원가량을 송금했다. 최씨가 조카 장시호(38·구속 기소)씨를 내세워 설립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2800만원을 후원했다.
특검은 국내 1위 기업 삼성이 왜 최씨 측에 끌려다니면서 거액을 댔는지 배경을 수사해 왔으며, 특히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를 주목했다. 박 대통령은 2014년 9월 15일 대구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참석했을 때 이 부회장을 따로 불러 승마 유망주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는 2015년 3월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는다. 국민연금공단의 찬성으로 삼성물산 합병이 가결된 지 8일 뒤인 2015년 7월 25일 박 대통령은 다시 이 부회장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승마 지원이 늦어지는 데 대해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독대 직후 삼성은 긴급회의를 열고 승마협회장인 박상진(64) 사장을 독일로 급파하는 등 최씨 모녀 지원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삼성 측은 이 과정이 대가성을 염두에 둔 자금 제공은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대통령의 직접 압박에 따른 불가피한 지원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직권남용이나 공갈의 피해자로 봐 달라는 것이다. 특히 수사 칼날이 이 부회장까지 올라오는 걸 차단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특검은 최 부회장이나 장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 삼성 측에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여러 정황 증거가 쌓이고 있지만 제3자 뇌물 혐의 입증을 위해 공여자인 삼성 최고위층의 진술이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다.
지호일 정현수 기자 blue51@kmib.co.kr
삼성 수뇌부 최지성·장충기 피의자 전환 가능성
입력 2017-01-1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