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많은 회사들이 지주사로 전환하면서 이른바 ‘자사주 마법’을 활용했다. 현행법에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하지만 지주사로 전환하려는 회사가 인적분할 방식으로 자회사를 설립하는 경우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에 대해서도 신주가 부여되고 의결권이 생기게 된다. ‘오너’들이 자사주를 활용해 지배율을 높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국회에 발의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경우 소수 지분을 가진 오너 일가가 자사주 또는 순환출자를 활용해 계열사 지배력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9일 국회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상법개정안은 지주사 전환을 위해 분할한 회사가 지닌 자사주에 분할신주 배정을 금지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계열사 자산 5조원이 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기업이 분할하거나 분할합병할 때 배정받은 분할 신설회사 신주에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한다. 둘 다 지주사 전환 때 자사주를 활용할 수 없도록 하려는 법안이다.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잇따라 발의되면서 지배구조 개편을 앞둔 재벌그룹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문제 해결과 경영권 이양 등을 위해 지주사 전환을 서두를 것이라는 게 증권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순환출자를 3년 안에 해소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겼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차·현대모비스·기아차 등 주요 3사 계열사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췄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순환출자 규제가 강화될 경우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규모가 커 계열사 간 지분 매각 및 매입으로 이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지주사 전환이 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지주사 전환 등을 위한 방안으로 정의선 부회장 보유 글로비스 지분과 기아차 보유 모비스 지분 교환 등이 거론되지만 이 경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 제기됐던 지분 가치 평가의 적정성 논란이 일 수 있다. 여기에다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SK에서는 중간지주회사 도입을 위해 SK텔레콤을 인적분할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SK텔레콤을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나눈 뒤 투자부문 자회사로 SKT사업, SKT플래닛, SKT브로드밴드, SK하이닉스를 거느리는 식이다.
롯데는 순환출자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으나 경영권 분쟁 뒤 이를 상당부분 해소했다. 신동빈 회장이 대국민 사과에서 약속했듯 한국롯데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를 상장시키면서 지배구조 변환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수사가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지배구조 개편 시도에 힘이 실릴지가 결정된다.
재계 1위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는 상당부분 수면 밖으로 나온 상태다.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한 뒤 삼성전자지주부문과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수순이다.
글=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기획] 지배구조 개편 앞둔 재벌그룹 ‘긴장’
입력 2017-01-10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