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을 혐오한 생태주의 건축가 ‘인간은 자연에 초대된 손님’ 철학 구현

입력 2017-01-10 17:35
독일 '담스타트의 숲 나선 아파트' 전경. 세종문화회관 제공
'나무와 사람을 위한 고가 빌딩' 건축 스케치. 정원 밑에 아파트가 매달려 있는 구조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이런 아파트가 있다니. 콘크리트 병풍을 세운 것 같거나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직선의 아파트만 봐온 터라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앞 동과 뒷 동이 달팽이 껍질처럼 나선형으로 연결되어 있고, 옥상에는 푸른 정원이 있다. 창틀조차 굽어져 있고, 벽체는 파스텔 톤으로 환하다. 전시장에 나온 건축 모형은 동화나 판타지 영화의 세트장 같지만 현실에서 구현된 것이라 더욱 놀랍다. 독일 담스타트에 있는 이 ‘담스타트 숲 나선 아파트’의 설계자는 오스트리아 생태주의 건축가이자 화가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2000)다.

근대 건축의 아버지인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가 효율성을 내세운 직선의 아파트 개념을 처음 창안했다면, 그보다 약 40년 후 태어난 훈데르트바서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건축을 주창했다. 그는 직선을 혐오했다. 달팽이 껍데기, 숫양의 뿔, 거미줄, 감겨 있는 나비의 코 등 자연에는 직선이 없어서다. 이렇듯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아이디어는 건축적 상상으로 그치지 않고 아파트 주유소 병원 쓰레기소각장 휴양시설 등에 구현됐다. 신축 뿐 아니라 기존의 공장 소각장을 리모델링 하기도 한다. 이런 자신의 활동을 그는 ‘건축 치료’라고 불렀다. 일본 오사카 마시마 섬의 마시마 소각장. 그의 손이 닿자 120m 높은 굴뚝을 가진 삭막한 소각장은 알록달록 유머가 피어나는 놀이공원처럼 변신했다.

훈데르트바서의 건축 및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특별전 ‘훈데르트바서: 그린 시티’전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과 모형, 실크스크린 회화, 환경포스터, 건축디자인 스케치, 태피스트리 등 총 140여점이 출품됐다. 무엇보다 곳곳에 설치된 6점의 건축 모형은 입이 벌어질 만큼 환상적이다. 회화 작품도 대거 나와 화가로서의 훈데르트바서도 조망한다. 폭격을 당하더라도 자신이 화가라는 걸 알 수 있게 늘 수채화 물감 케이스를 지니고 다녔다는 그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원색의 따뜻한 회화가 가슴을 데워준다. 단순히 힐링을 넘어 인간은 자연에 초대된 손님이라는 그의 철학에 공감하게 되는 전시다. 건축에 관심이 없더라도 아이들의 상상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방학을 맞아 가볼 만하다. 오는 3월 12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