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파 대부’ 라프산자니 타계… 이란 대선판 요동

입력 2017-01-09 18:15 수정 2017-01-09 21:35
‘이란혁명 1세대’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8일(이하 현지시간)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시민들이 수도 테헤란 북부 자마란 사원에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개혁적 실용주의 노선을 내걸어온 라프산자니의 죽음으로 이란이 더욱 보수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장례식은 10일 테헤란과 시아파 성지인 콤에서 치러진다. 신화뉴시스

이슬람혁명 1세대인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이란 대통령이 사망했다. 실용주의자이자 중도개혁파의 대부 격인 그가 타계하면서 오는 5월로 다가온 대선판이 요동치고 있다.

이란 국영방송에 따르면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심장마비를 일으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향년 83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혁명의 위인이자 저항과 인내의 상징인 그가 천국으로 떠났다”고 애도했다. 이란 정부는 3일간의 애도 기간을 가진 뒤 10일 수도 테헤란과 시아파 성지인 콤에서 장례식을 치른다.

빈농의 아들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1979년 초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후롤라 호메이니와 함께 팔레비왕조를 무너뜨렸다. 이슬람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뒤 혁명정권의 내무장관, 의회(마즐리스) 의장을 지냈다. 89년 대통령에 당선돼 재선에 성공하며 97년까지 이란을 통치했다. 대통령 재임 당시 이라크전쟁(80∼88년)으로 추락한 국가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서방에 문호를 개방하고 해외 투자를 적극 유치했다. 이슬람 율법이 정한 극형에 반대하고 여성인권 향상에 힘쓰는 등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다.

아들이 부정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는 등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이란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주요 사안에 따라 온건파, 개혁파와 손을 잡는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하며 권력의 중심에서 균형추 역할을 했다. 83년부터 34년 동안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권한을 가진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위원을 역임했다. 사망 직전까지 국가조정위원장을 맡았다.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이자 혁명 동지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89년 호메니이에 이어 최고 지도자에 오르는 데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때 ‘킹 메이커’라는 별명을 얻었다. 반(反)서방 강경책을 고집한 하메네이와 달리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중도개혁 성향을 드러내며 97년 대표적인 개혁파 인사인 모하마드 하타미, 2013년 중도개혁 성향의 로하니 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의 사망은 대선 구도에 큰 변화를 일으킬 전망이다. 특히 자신의 멘토이자 유력한 지지자를 잃은 로하니 대통령은 밝았던 연임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이날 로하니 대통령은 병원을 찾아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의 시신을 안고 오열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대를 맞아 이란 핵협상 이행 등 대미 관계도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로하니 대통령과 함께 2015년 이란 핵협상을 주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의 부재에 따라 이란 정치권의 극단적 반미 성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과 이란의 관계 개선 전망이 어두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워싱턴포스트도 “정치경제적 개혁과 문화 개방을 추진해온 이란 온건파에 커다란 공백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