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줄줄 새는 개인정보… 부동산 업계 불법 거래 판친다

입력 2017-01-10 00:01

“사모님, 좋은 물건이 나왔는데요.”

직장맘인 A씨(42)는 최근 부동산 매입 권유 전화를 받았다. 몇 년간 비슷한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던 터라 놀랍지도 않았다. A씨가 “제 번호 어떻게 아셨냐”고 묻자 “2013년 마포 지역 아파트 청약을 위해 모델하우스에 오시지 않았냐”는 답이 돌아왔다. 단순히 연락처를 넘어 특정 지역, 특정 아파트에 청약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는 얘기에 A씨는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파트나 오피스텔 견본주택에서 상담한 사람들의 개인정보가 부동산 관련 업체들 사이에서 무차별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정보는 A씨의 경우처럼 다른 주택 사업 시행자에 넘겨지는 것은 물론 부동산 중개업소 등에 판매됐다.

서울 은평구의 한 오피스텔을 매입한 B씨(38)는 “지난해 청약 대금을 마지막으로 입금하고 나서 해당 지역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면서 “분양받은 오피스텔을 임대할 거냐고 물으면서 분양받은 호수까지 알고 있었다”고 했다. B씨에게 중개업소 대표는 “모델하우스 직원에게 정보를 샀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9일 “견본주택에서 벌어지는 불법 행위를 감시하고는 있지만 상담받은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 국토부는 주택법 55조에 개인정보보보호법을 근거로 한 자료제공 요청 조항을 마련해 놨다. 주택을 공급받으려는 사람들의 입주자 자격을 확인하기 위해 주택사업 시행사는 개인정보를 요청할 수 있지만 해당 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타인이나 타 기관에 제공하거나 누설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법이 있음에도 정보 유출을 사실상 막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재 주택사업을 시행하는 대형 건설사들은 분양 대행업체에 용역을 주고 있는데 청약 관련 접수와 상담, 관리를 하고 있다”면서 “계약이 끝난 이들이 개인정보를 가지고 나와서 거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상 감시가 어렵다”고 말했다.

견본주택에서 나온 개인정보의 경우 ‘부동산’이라는 특정 사안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죄질이 더 나쁘다는 의견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차라리 포털이나 인터넷 쇼핑몰을 해킹해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면 소송 대상이 명확하고 피해자도 특정하기 쉽다”면서 “이 경우 소송 대상도 불분명한 데다 정보를 유출당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대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도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개인정보를 유출한 만큼 경찰에 고발 조치하는 게 맞다.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라고 했다. 이어 “향후 이 같은 시장 상황을 점검한 뒤 회원사 협회를 통해서 업체들에 유의해 달라고 권고하는 방법 등을 고민해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