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 세운 미술관… 관람객 15만 돌파

입력 2017-01-09 21:26
부암동 서울미술관 설립자 안병광 장로가 지난 4일 미술관 벽면에 붙어있는 ‘비밀의 화원’ 전시 포스터 앞에서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서울미술관 조감도. 강민석 선임기자
서울 부암동에 있는 서울미술관(이사장 서유진) 관람객이 지난해 15만명을 돌파했다. 이는 1년 평균 관람객이 3만∼5만명인 다른 사립미술관의 2∼3배 수준이다.

지난 4일 서울미술관에서 만난 설립자 안병광(61·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젊은이들과 소통하려 한 것이 주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개관 4년 만에 거둔 이 같은 성과는 안 장로의 꿈과 노력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보통 미술관하면 나이 든 사람, 돈 많은 이들이 찾는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미술관은 모든 세대, 특히 젊은이들이 와서 놀다가는 놀이터 같은 곳이 되길 바랐다”고 했다. 현재 전시 중인 기획전 ‘비밀의 화원’도 동명 소설을 테마로 삼는 등 젊은 관객들을 겨냥했다.

안 장로는 미술과 무관한 사람이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던 그는 1988년 의약품유통회사인 ㈜유니온약품을 설립했다. 이 사업체를 연매출 4000억원, 10위권의 의약품 유통업체로 성장시켰다.

그런 그가 미술과 인연을 맺은 것은 ‘황소’라는 그림 한 장 때문이었다. 83년 영업사원 시절 한 액자가게에서 본 황소 그림에 반해 당시 돈으로 7000원을 주고 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작품은 그림이 아니고 사진이었다. 진짜 그림을 찾아보니 가격이 기와집 한 채 값이었다. 이 그림이 이중섭의 대표 작품 ‘황소’였다. 안 장로는 사업가로 성공한 후인 91년 이 작품을 35억6000만원에 샀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미술관을 짓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꿈은 현실이 됐다. 한 점, 두 점 사 모은 200여점을 보관할 곳이 필요했고 ‘황소에게 소 외양간을 지어주자’는 생각도 들어 2012년 미술관을 세웠다.

안 장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꿈이라고 했다. “재능이나 노력만 갖고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재능, 노력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꿈을 꾸느냐 입니다. 미술관을 짓겠다는 꿈을 꾸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꿈을 꾸는 법은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에게 배웠다. “25세 때 처음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갔는데 그때 ‘꿈을 꾸라’는 목사님의 설교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오늘 월세 살던 사람이 3년 후에 전세로 가지 못하거나 전세 살던 사람이 집을 못 사면 우리 교회에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기복신앙’이라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메시지를 ‘아멘’으로 받았습니다. 그때 꾼 꿈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서울미술관에는 부대시설로 흥선대원군 별서인 석파정이 있다. 본래 철종 때 영의정인 김홍근의 소유였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이 ‘임금이 하루라도 묵은 곳은 민간인이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이용해 아들 고종을 이곳에 머물게 한 후 빼앗은 곳이다. 흥선대원군은 당시 천주교를 말살하기 위해 천주교인 8000여명을 죽였는데, 이곳은 그들의 피가 서린 곳이기도 하다.

안 장로는 2013년 이곳에서 ‘예수생애전’을 열었다. 외환위기 때 사들인 운보 김기창 화백의 ‘예수의 생애’ 30점을 전시했다. 안 장로는 “‘감정’이 있는 땅을 예수 그리스도의 따뜻한 ‘감성’이 있는 땅으로 바꾼 것”이라며 “반전의 역사를 펼친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망을 묻자 안 장로는 “미술관 운영이 쉽지 않지만 관람객을 보노라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십분 이해가 된다”며 “앞으로 서울미술관이 한국의 문화를 융성하게 하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