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성과 현실성 수용 리모델링-정읍 고부교회] 서양 고딕건축 양식에 선대의 신앙 유산 살려

입력 2017-01-09 21:23
2016년 11월 6일 원형을 살려 리모델링한 고부교회. 교인들이 성전건축 입당감사예배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리모델링 전 예배당(왼쪽 두번째가 노시점 목사).
리모델링 후, 종탑을 살렸다.
전북 정읍시 고부면 고부교회는 전형적인 시골교회다. 교회는 고부면 소재지 중심 언덕에서 마을을 굽어본다.

이 교회는 한국 개신교 전래 직후 마을 중심 언덕에 건축됐다. 근대화 시기 이 터에 벽돌이나 시멘트 블록을 재료로 하는 고딕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어설프긴 했지만 가난했던 시절이라 한국적 교회 건축으로 자리 잡았다.

1924년 설립된 고부교회 예배당은 한국교회가 한창 부흥하던 1970∼80년대 고딕류 교회 건축양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현 예배당은 78년 신축됐다. 프랑스 초기 고딕의 세느발레성당과 이탈리아 밀라노대성당을 흉내냈다고 봐야할 것이다. 신전과 회당 기능을 동시에 충족시키려했던 것 같다. 116㎡(35평) 넓이에 마루식 예배당. 화장실은 본당에서 20m쯤 떨어져 있었다.

당시 헌당예배를 드렸던 은승자 권사(73)는 “예배당은 고부에서 가장 우뚝 솟은 신식 건물이었다”며 “시계가 귀한 시절이라 교회 종탑 종소리가 시보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시멘트 블록 예배당은 낡아 10여년 전쯤부터 비가 새고 한기가 스며든다. 예배와 교제가 힘들어질 정도가 된 것이다. 냉난방비도 부담이었다. 수차례 샌드위치 판넬을 활용한 개·보수 공사를 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교인들은 건축헌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지난해 초까지 8000만원 정도를 적립했다.

한데 2005년 부임한 노시점 목사는 고민이 더 깊어졌다. 20∼30명이 출석하는 현실에 초고령화 되어가는 농촌, 역사성 있는 교회의 예배당을 살리지 않고 신축하는 게 과연 능사인지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부는 동학농민혁명 진원지로, 고부교회는 동학혁명 실패 후 폐족처럼 살던 지역주민에게 복음의 희망을 심어주는 장소였다. 일제강점기 정희수 목사, 반독재 투쟁을 펼쳤던 은명기 목사, 별세신학의 거장 이중표 목사 등이 이 교회를 거친 목회자들이다.

고부교회는 지난해 11월 6일 성전개축 입당감사예배를 올렸다. 한때 100∼200명의 출석 교인이 있었으나 도시이주로 마을 주민이 줄어들면서 작은 공동체가 됐다. 그래도 반드시 교회공동체는 존재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유서 깊은 교회건물을 다시 리모델링한 것이다.

“제직들과 논의 끝에 우리 교회의 역사를 살리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배당이 어찌 건물만이겠습니까. 나무 한 그루, 돌계단 하나, 녹슨 종탑에도 영성이 배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유명 건축가를 초청해 자문도 받았어요. 교회 문을 나서면 보이는 100여년 된 백일홍 한 그루에도 선대의 신앙이 담겼다고 하더군요. 개축으로 방향을 틀었고 다 완공했습니다. 기존 예배당에 벽돌을 덧 대고, 화장실을 본당으로 끌어들였어요. 십자가탑 아래 게스트하우스를 겸한 20㎡ 넓이 기도실 공간도 확보했고요.”

노 목사가 9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기독교 순례코스와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탐방 등을 통해 한국의 작은 교회들이 근·현대사 속에 행한 믿음의 실천을 알릴 계획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심신이 지친 도시 교인들이 교회 마당에서 캠프를 하며 밤하늘을 본다면 이 역시 창조의 축복일 겁니다. 누가 와도 따뜻한 곳이 목표였는데 리모델링을 통해 성취했습니다.”

●교회 건축이 예전(禮典) 중심에서 교인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 변화되고 있다. 성도들은 항상 예수님에게 예배드리는 공간이 역동적이길 바란다. 서로 소통하며 다양한 삶의 형식이 소화되길 원한다. 교회 공간은 공동체이며, 말씀을 양식으로 서로를 연결하는 장소다. '교회와 공간'은 회중을 위한 새로운 지면이다.

정읍=글·사진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