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주범들의 거대 권력 온몸으로 견딘 피해자들… “새해엔 다 잊고, 새출발하고 싶다”

입력 2017-01-09 05:05

법정과 헌법재판소에서 죄 없음을 주장하는 국정농단 주범들은 사회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이들은 주범들이 거대한 권력을 휘두를 때 아무 도움도 없이 온몸으로 견딘 이들이다. 검찰과 국회 청문회장에서 용기를 내 증언했던 이들은 새해엔 어지러운 정국에서 벗어나 본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조용히 새 출발을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라는 이들은 묵묵히 고통을 견디고 있다.

컴투게더 한상규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일보에 “조용히 상처를 치료하며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 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김홍탁 모스코스 대표,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등에게서 “묻어버린다”는 말과 함께 “광고회사 포레카 지분 80%를 내놓으라”는 협박을 받았었다. 3개월여 협박이 이어졌지만 한 대표는 꿋꿋이 계약금을 지불하고 단독인수 준비를 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기립박수까지 쳤다는 한 대표의 금융위원회 CF는 방송에 나가지 못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컴투게더랑은 하지 마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 대표는 이 모든 일을 청문회장에서 담담히 말했다. 그는 “특별히 제가 정의롭거나 용감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 가족과 직원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버텼을 뿐”이라고 말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의사’로 지목된 김영재 원장과 관련한 피해자도 다수다. 김 원장의 가족회사 와이제이콥스메디칼의 중동 진출에 난색을 표했던 이현주 대원어드바이저리 대표가 대표적이다. 그는 최근 국민일보에 “내가 언론에 더 나가면 안 된다”며 가족들을 염려했다. 컨설팅 대표로서 2014년 2월 김 원장 측을 만난 그는 준비가 미비하다고 판단해 보고했다 온갖 정부 기관으로부터 희한한 조치를 받았다.

그해 가을부터 이 대표는 국가정보원의 사찰을 받게 됐다고 기억했다. 이 대표를 포함, 아버지 관련 회사와 할아버지 관련 회사까지 3대가 동시에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는 일이 잇따랐다. 감사원 역시 공무원인 이 대표 동생을 감사했는데, 협박성이었다. 국회 청문회에서 이 대표가 이러한 일들을 용기 내 증언했지만 그 뒤에도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이 대표는 한사코 말을 아낀 채 “부역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만 전했다.

정기택 전 보건산업진흥원장은 “새해에는 새 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고맙겠다”고 인터뷰를 사양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다 이야기했기 때문에 언론에 더 할 말이 없다”고만 했다. 그가 2015년 3월 중동 순방 명단에서 김 원장을 빼자 청와대는 진흥원 산하 중동센터에 대한 특별감사를 지시했다. 어느 날 보건복지부 담당자가 찾아와 “위의 뜻이니 거취를 정리해 달라”고 했다. 그가 기관장일 때 보건산업진흥원의 경영평가 실적은 D등급에서 B등급으로 올랐다. 앞서 청문회장에서는 “기회 박탈이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