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정영두(43)는 지난해 10월 29일부터 11월 6일까지 영국 런던의 한국문화원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일본 릿쿄대학 특임준교수로 도쿄에 거주하는 그가 런던까지 간 것은 용호성 한국문화원장에게 2015년 10월말 국립국악원의 검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촉구하기 위해서다.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이었던 용 원장은 극작가 겸 연출가 박근형이 참여할 예정이었던 앙상블 시나위의 공연 ‘소월산천’을 사전검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근형은 박정희-박근혜 부녀를 풍자한 연극 ‘개구리’ 때문에 현 정부에서 미운 털이 박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심사에서 신작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지원 포기를 종용당한 것이 밝혀졌다.
국립국악원은 당시 앙상블 시나위의 공연을 2주 앞두고 갑자기 박근형을 문제 삼았다. 용 원장이 밝힌 표면적인 이유는 극장 시설이 연극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앙상블 시나위는 박근형을 제외하라는 용 원장의 요구를 거절했고, ‘소월산천’ 은 결국 취소됐다.
국립국악원 사태를 외부에 처음 알리고 공론화한 인물이 바로 정영두다. 현대무용 분야에서 손꼽히는 스타 안무가인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리는 한편 항의 차원에서 자신이 출연할 예정이던 국립국악원 공연도 거부했다. 그가 1인 시위에 나선 뒤 연극·무용·국악계의 젊은 예술가들도 릴레이 시위에 나섰다. 이후 그는 일본에서 시위와 함께 심포지엄을 열어 한국의 검열 문제를 이슈화 시켰다.
그가 오는 2월 9일 서울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예정된 설치미술과의 협업 때문에 최근 한국에 잠깐 돌아왔다.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북파크에서 만난 그는 “처음 1인 시위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검열 문제에 대해 우리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었던 것 같다”면서 “이번에 특검의 블랙리스트 수사는 촛불을 든 수많은 시민과 함께 항의를 멈추지 않은 예술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논란이 됐던 국립국악원의 ‘소월산천’과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검열 문제는 자존심 있는 예술가라면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앙상블 시나위의 신현식 대표로부터 ‘소월산천’ 이야기를 들은 뒤 김혜숙 국립국악원장에게 몇 번이나 취소를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국립국악원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면서 “공연은 결국 취소됐지만 당시 젊은 아티스트들이 검열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든 것은 소득이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가 만만치 않은 자비를 들여 런던까지 간 이유는 무엇일까. 용 원장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특검 수사를 받긴 했지만 소위 ‘몸통’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용 원장도 “억울하다”는 입장을 언론에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검열 문제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을 비롯한 예술행정가들의 역할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는 “런던에서 용 원장을 만났을 때 ‘왜 나를 타깃으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묻더라. 하지만 나는 예술행정가들이 책임 없는 기득권을 누리는 문제를 더 이상 간과해선 안된다고 본다”면서 “예를 들어 용 원장만 보더라도 자신의 치적에 대해서는 ‘나’를 앞세운 개인으로서 이야기하다가 잘못을 지적하면 기관 뒤에 숨어버리는 화법을 구사한다. 이번에 연극계가 만드는 ‘검열백서’가 예술행정가의 실명까지 모두 밝히기로 한 것도 내 생각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예술가나 예술행정가나 아무리 국가 이데올로기의 압력을 받더라도 상식과 윤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톡톡히 배우게 됐다”고 덧붙였다.
글=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인터뷰] 안무가 정영두 “검열문제, 예술행정가들의 역할 분명히 밝혀야”
입력 2017-01-10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