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가정보국 “푸틴이 트럼프 지원 직접 지시”

입력 2017-01-08 18:55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한 식당 외벽에 그려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키스하는 장면을 묘사한 벽화와 이를 따라하는 연인의 모습. AP뉴시스

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정권이 임기 마지막까지 온힘을 다해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을 규탄하고 차기 공화당 정권에 러시아와 결탁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끄떡도 하지 않고 러시아와 잘 지낼 것을 다짐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공개된 기밀해제 보고서에 따르면 미 국가정보국(DNI)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트럼프의 당선을 도우려 해킹을 통한 미 대선 개입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러시아 해킹에 관한 정보기관 보고서는 수차례 나왔지만, 푸틴의 소행임을 적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DNI는 푸틴이 자신을 계속 비난해 온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친러시아 성향의 트럼프가 당선되도록 작전을 지시한 것으로 분석했다. DNI에 따르면 러시아 정보기관은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등을 해킹해 폭로 전문매체 위키리크스에 자료를 전달했을 뿐 아니라 ‘댓글 알바’를 고용해 SNS에 악성 댓글을 달게 했다. 다국어 뉴스채널 ‘러시아투데이(RT)’ 등 러시아 관영 언론도 클린턴 공격에 활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런 분석결과의 증거자료는 보안을 이유로 기밀해제 보고서에 제시되지 않았다. 기밀정보가 포함된 내용은 오바마 대통령과 트럼프, 의회 지도부에 따로 보고됐다.

트럼프는 제임스 클래퍼 DNI 국장으로부터 보고받은 뒤 처음으로 러시아의 해킹 사실을 인정했지만, 해킹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가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7일 트위터에 “해킹이 선거결과에 영향을 줬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고 정보기관들이 매우 강력히 밝혔다. 투표기계는 건들지도 않았다”는 글을 올렸다. 이어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심각한 부주의로 해킹이 발생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강력하게 방어했다”며 민주당의 책임을 부각시켰다.

푸틴이 자신을 당선시키려고 해킹을 지시했다는 부분에선 난처할 만도 한데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친러 기조를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8일 트위터에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좋은 일이지 나쁜 게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들과 바보들만 그게 나쁘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러시아는 지금보다 훨씬 우리를 존중할 것”이라고 썼다. “두 나라는 세계의 많은 중대하고 긴급한 문제와 이슈들을 함께 해결해나갈 것”이라는 트윗도 날렸다. 러시아의 대선 개입이 사실로 굳어졌음에도 노선 조정 없이 ‘마이 웨이’를 지속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6일 ABC방송 프로그램에서 트럼프를 향해 “우리가 같은 팀이고 푸틴은 우리 팀이 아니다”고 경고했다. 그는 “최근 공화당 의원이나 전문가들이 민주당원이라는 이유로 같은 미국민보다 푸틴을 더 신뢰하는 듯한 발언을 많이 하는데 그래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일관되게 대선 개입 사실을 부인했다. 러시아 상원 국방안보위원회 소속 알렉세이 푸시코프 의원은 “모든 혐의가 확신과 추정에 기대고 있는데, 미국은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고 했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확신했다”는 트윗을 올렸다. 러시아에 씌운 해킹 혐의가 미국이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이라크전을 일으켰던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이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