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재닛 옐런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71세 동갑내기다. 국제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인 옐런 의장은 올해 세계경제에 미칠 불확실성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을 꼽았다. 옐런 의장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연준 위원들은 향후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정책 변화와 영향에 대해 상당한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불확실성은 경제정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외교안보와 통상부문에서도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트럼프는 대만 총통과 전화통화를 하는 등 ‘하나의 중국’ 정책을 흔들어놓았다. “중국이 북한 문제에 있어서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커질수록 한국의 입지는 좁아진다. 한국은 이미 사드 배치로 중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 북한 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중국이 트럼프의 압박으로 어떤 태도를 보일지 예측하긴 쉽지 않다.
트럼프는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주장에 대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근거나 대책을 밝히지는 않았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에는 “김정은을 제거하겠다”고 했다가 “그와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할 수 있다”고 한 적도 있다. 어떤 게 진담인지 알 길이 없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거나, ICBM을 쏘아 올리면 미국이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온갖 시나리오가 나돌지만 트럼프 선택을 예상하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막상 대통령이 되면 선거 때 주장은 철회하고 공약도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대선 승리 이후 트럼프의 행보를 보면 그런 기대는 난망인 것 같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중 여러 차례 “한·미 FTA로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가 커졌고, 미국인 일자리가 줄었다”고 주장했다. 대선이 끝난 뒤에는 한·미 FTA를 거론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대한 통상압력을 유보할 것이라고 보는 건 안일한 시각이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양자협상을 해야 하는 6개국 중 하나로 한국을 지목한 보고서가 있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들이 트럼프 행정부와 백악관의 통상정책 책임자로 기용됐다. 신설된 국가무역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된 피터 나바로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상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윌버 로스가 그들이다.
대선이 끝난 뒤 한국 국회와 정부는 여러 차례 방문단을 꾸려 트럼프 정권 인수위원회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정작 트럼프를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참모들을 만나는 것과 최고 권력자를 만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트럼프를 상대하려면 대통령이 나서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정지 상태이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도 어렵다.
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트럼프를 자주 만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오는 27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지난해 11월 미 대선 직후 뉴욕으로 날아가 트럼프를 면담한 데 이어 두 번째 만남이다. 일본으로서는 큰 이해관계가 걸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트럼프의 반대로 폐기됐지만, 트럼프를 만나 대화하고 소통하는 데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노력에 힘입어 아베는 트럼프의 첫 정상회담을 따냈다.
이제 열하루가 지나면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다. 트럼프의 대북정책과 통상마찰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우려가 많지만 한국은 트럼프가 어디로 갈지 한동안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처지다. 답답하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특파원 코너-전석운] 트럼프의 불확실성
입력 2017-01-08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