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이관세] 평화의 틀, 우리가 먼저 짜야

입력 2017-01-08 18:48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은 동북아 질서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 대외정책의 핵심은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로 대변되는 신고립주의, 보호무역주의, 미국 국익 우선주의다. 지난 8년간 오바마 정권이 펼쳐온 대외정책과는 결이 매우 다를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읽고, 바뀐 본류(本流)를 타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중국은 물론 미국의 아태지역 맹방인 일본, 강대국 부활을 꿈꾸는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 모두 본격적인 대응 준비를 시작했다. 북한도 2017년 신년사를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준비가 마감단계에 이르렀다며 미국을 향해 핵무력 강화를 강조했다.

우리는 그동안 국제정세 변화를 ‘바꿀 수 있는 변수’가 아닌 ‘불변의 상수’로 여긴 측면이 있다. 우리의 대응이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 때문이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중국이 부상한 이후 한반도를 중심으로 미·중 간 갈등양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란에서 이미 확인한 것처럼 한·미 간 정책에 중국이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북핵문제로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을 이어온 가운데 한반도는 수년째 위기와 정체가 반복되고 있다. 매해 초가 되면 어김없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남북관계 개선이 화두에 오른다. 하지만 2∼3월에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실시되면 북한은 핵·미사일 시험 도발로 대응하고, 국제사회는 이를 비난하며 대북 제재에 나선다. 그리고 다시 대화와 협상 국면 전환을 시도하며 상반기가 지나간다. 하반기에도 상반기와 같은 양상이 전개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로 한반도 내 갈등이 커지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논의가 강화되면서 한반도 상황은 다시 긴장과 정체상태에 빠진다.

언제까지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갈등의 장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세계 4강에 둘러싸여 주변의 변화를 따라가기만 하면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반복되는 현재의 구도를 탈피하려면 우리가 먼저 나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 틀을 짜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 등장과 함께 시작된 주변국의 대외정책 변화는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주변국의 대외정책이 상수에서 변수로 바뀌는 상황은 우리의 국익을 높이는 틈새를 찾는 데 용이한 조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재정비와 아시아 재균형 전략 및 한·미·일 군사협력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밖에도 중국에 대한 통상 압력,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 폐기,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를 언급하고 있어 동북아의 판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에 있어서도 트럼프는 오바마 행정부와는 다른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신질서로 재편되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 가운데 우리는 예고된 변화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전략의 키(key)를 찾아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로 남북관계가 정체되고 한반도에 긴장과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지속되는 한 미국과 중국은 자국의 이해에 따른 개입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외교적 자율성 없이는 국익도 확보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남북관계 정상화가 시급한 과제인 이유다. 이를 위해서는 서둘러 북한의 비핵화(非核化)를 이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과 남북관계를 적극 활용해 우리 스스로 이 변화를 주도해야 할 때다.

이관세(경남대 석좌교수·前 통일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