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업계 1위 현대차의 부진이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잇단 차량 결함 논란으로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 신화가 흔들리면서 내수시장엔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취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영향 등으로 주력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도 고전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이 지나치게 높은 연간 목표치를 내놓자 일각에선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8일 자동차·증권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해 4분기 국내 판매량이 전년 대비 18.2% 감소한 17만6000대를 기록했다. 연간 누적 판매 1위 자리도 11월까지 계열사인 기아차에 뺏겼다가 12월 들어서야 간신히 되찾았다. 태풍으로 생산 차질을 겪은 데 이어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노조와의 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해 피해를 자초했다.
부진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을 뺀 대부분 국가에서 12월 판매가 전년 대비 역성장을 기록했다. 지난달 미국 자동차 시장 소매 판매가 호조세였음에도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9% 줄었다. 시장점유율은 최근 5년 사이 가장 낮은 3.7%를 기록했다.
그나마 파업 적체 물량 해소 덕에 수출이 전분기 대비 3% 상승한 걸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연말이었다. 미국 경제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일 “그간 현대차의 강점이던 세단(일반 승용차)에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로 소비자의 선호가 옮겨가면서 판매량과 수익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버팀목이었던 중국 시장에서 올해는 출발부터 고전이 예상된다.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7일간 이어지는 중국 춘제(春節) 연휴가 고민이다. 한화투자증권 류연화 연구원은 “현대차는 1월 영업일수 부족으로 역성장할 것”이라며 “내수에서 그랜저 신차 효과가 발휘되겠지만 설 연휴 때문에 국내와 중국 공장 가동률이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2017년 미국 자동차 수요가 소폭 감소할 것으로 전망돼 인센티브 지출 등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봤다. 상황 타개를 위해서는 제3시장 개척이 필수적이지만 앞날이 밝지 않다. 유망 시장인 동남아의 경우 일본 브랜드 점유율이 이미 압도적이다.
비관적 전망에도 경영진은 외려 목표치를 올려잡았다. 글로벌 판매 목표량을 전년보다 7만대 늘어난 508만대로 잡았다. 시장에선 현대차가 2년 연속 목표치를 달성 못했기에 이번엔 실현 가능성이 높게끔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공격적인 실적 전망을 제시, 자칫 3년 연속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불명예를 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안젤라 홍 노무라증권 연구원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올해는) 쉬운 시장이 하나도 없다. 세계 최대 규모의 두 시장(중·미)에서 성장이 정체될 것”이라면서 “현대차가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았다”고 평했다.
현대차의 실적 부진은 정의선 부회장의 후계 구도 완성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 부회장은 연초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직접 기조연설에 나서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선 안정적인 경영체계 이양을 위해서는 지난해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제네시스 등 프리미엄 브랜드의 미국 시장 안착을 관건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브랜드 구축에 한참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중평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최근 현대차가 G70 등 신차 출시 일정을 앞당긴 건 당장 마음이 급하다는 것”이라면서 “정 부회장이 새 사업 부문 개척을 위해 CES에 직접 나선 것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봤다.
글=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기획] 잇단 악재에 ‘주춤’… 현대차 올해도 속도 못 내나
입력 2017-01-08 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