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실내클라이밍센터. 초등학생 어린이들부터 건장한 성인들까지 형형색색의 홀드(인공 손잡이)를 잡고 인공암벽을 오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다양한 인공암벽들로 자리잡은 이곳 센터에는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실내 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공암벽 최상단의 목표지점에 도착한 클라이머들의 이마엔 겨울을 잊은 듯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대한산악협회 스포츠클라이밍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클라이밍 인구는 약 20만명이다. 2015년 200여개 수준이었던 국내 인공암장은 2년이 채 안된 현재 두 배 이상 증가한 400여개에 이른다. 스포츠 클라이밍은 지난해 8월 2020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이후 생활체육 동호인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대표 마니아 스포츠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스포츠 클라이밍은 직접 로프를 걸어 인공암벽을 오르는 리드 클라이밍, 로프 없이 홀드를 이용해 목표지점에 오르는 볼더링 등이 있다. 동호인들 사이에선 볼더링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손의 미끄러움을 보완해주는 초크와 암벽화(클라이밍 슈즈) 외에 별도의 준비물 없이 쉽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클라이밍은 반복된 운동을 통해 근력과 경험을 쌓게 된다.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이 함께 이뤄져 체력 소모가 크고 운동 효과가 좋다. 시간 제약이 없고 연령, 성별, 체력, 체격에 따라 운동량을 조절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다.
볼더링은 각 클라이밍센터마다 코스가 다르다. 홀드의 형태나 위치에 따라 암벽을 오르는 코스의 난이도와 동작이 제각각이다. 클라이머들은 이처럼 제각각인 코스를 등반하는 것을 두고 흔히 ‘과제를 해결한다’는 표현을 쓴다. 이 과제는 단순히 체격이나 체력이 좋다고 해서 수월하게 푸는 것도 아니다.
강서클라이밍센터의 장용호(31) 코치는 “스포츠 클라이밍은 몸으로 푸는 수학문제”라고 말했다. “단순히 힘으로만 즐기는 스포츠가 아니라 인공암벽을 오르기 전 문제점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한다”는 것이 장 코치의 설명이다. 이어 그는 “회원들끼리 서로 루트 파인딩(이미지 등반) 전략을 공유하며 친목을 도모하는 점도 클라이밍의 숨겨진 묘미”라고 소개했다.
클라이밍은 최근 20-30대 싱글족이 증가하면서 더 각광받는 추세다. 대개 클라이머들은 지인에게 추천받은 경우가 아니면 호기심에 홀로 인공암장을 방문한다. 이후 암벽을 두고 마주한 다른 클라이머들과 함께 루트 파인딩을 하며 금세 친분을 쌓는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이들은 운동 후 자연스레 뒷풀이를 한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소모임을 일컫는 ‘크루 문화’가 발달하고 있다.
이곳 센터에는 8살부터 70대까지 전 연령층의 남녀 클라이머들이 인공암벽을 오르고 있다. 여성 클라이머 송성아(28)씨는 2년 전 취업준비를 하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우연히 인공암장을 찾았다. 이후 송씨는 클라이밍의 매력에 푹 빠져 새로운 취미로 삼았다. 매년 500∼1000여명의 동호인 및 선수들이 참가하는 SPOEX, 노스페이스컵 클라이밍 대회 등에 참가하고, 클라이밍 실력향상을 위해 별도의 근력운동까지 한다. 송씨는 “클라이밍은 전신 운동이라 균형 잡힌 몸을 가질 수 있다.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해야 하는 것도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또 “암장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고, 벽과 홀드의 생김새와 위치가 달라 운동환경이 다르다”며 “일부러 새로 생긴 암장을 찾아 다닌다”고도 말했다.
초등학생 전재민(12)군은 2015년 여름 어머니의 권유로 클라이밍에 입문했다. 전군은 “올라갈 때 힘들지만 목표를 달성하면 성취감을 느낀다. 학원만 다니면 지루한데 클라이밍을 하면 재밌고, 새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 좋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태균(36)씨는 “클라이밍은 몸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느낌”이라며 “운동하다 쉬면서 실력자들이 어떤 동작을 취하는지 보는 것도 큰 재미”라고 클라이밍의 매력을 소개했다.
■ 기자가 난생 처음 체험해보니
기본 코스 2회 왕복에 팔이 ‘파르르’ 떨려
실내 클라이밍이 무엇이길래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까. 기자가 직접 체험에 나섰다.
난생 처음 인공암벽과 마주했다. 능수능란하게 암벽을 타는 클라이머들을 지켜보고 있으니 평소 운동 좀 한다는 자신감에 충분히 따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먼저 암벽화를 착용했다. 보통 자신의 운동화 사이즈보다 두 치수 작게 신는다고 한다. 입문용 암벽화는 밑바닥이 평평한 편이다. 하지만 숙련자용일수록 암벽화 앞쪽이 더 굽은 것을 신는다. 이는 발 앞쪽 끝의 힘을 이용해 심화된 발 기술을 사용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입문자용 암벽화를 신었지만 처음 착용해본 탓에 발끝이 살짝 굽어지고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강서클라이밍센터의 장용호 코치는 클라이밍에 대한 몇 가지 팁을 알려줬다. 장 코치는 “암벽을 오르기 전에 충분히 루트 파인딩(이미지 등반)을 해야 힘을 덜 들이고 등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항상 손보다 발이 먼저 움직여야 체력을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급 난이도인 노란색 1번 홀드를 잡고 조금씩 오른쪽으로 몸을 옮겼다. 머리로는 발을 먼저 이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새 손이 먼저 앞서가고 있었다. 이는 클라이머가 다음 차례의 홀드(인공 손잡이)를 잡고자 하는 사람의 본능적인 심리 때문에 나타나는 흔한 현상이라고 한다. 기본 코스를 2회 왕복한 뒤 팔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10분 만에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체력소모가 많았다.
실내 클라이밍에선 각 코스의 홀드마다 숫자와 색깔이 정해져 있다. 루트 파인딩을 건너뛰니 홀드 잡는 순서를 어기는 파울을 범하기도 했다. 또 다음 홀드로 잡기 위해 동작을 계산하느라 매달려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만큼 더 많은 힘이 소요됐다.
볼더링에도 도전해봤다. 어떤 움직임으로 등반해야하는지 경험이 없었던 터라 얼마 오르지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실패할 때마다 다음에 어떻게 오를지 전략을 세웠지만 5번의 시도에도 끝내 오르지는 못했다. 볼더링은 같은 코스라도 클라이머의 체형과 체격에 따라 과제 해결 방법이 다르다. 나만이 풀 수 있는 ‘정답’을 만드는 것도 클라이밍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글·사진=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손끝 발끝으로… 수학문제 풀 듯 오른다
입력 2017-01-10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