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은의 씨네-레마] 모든 꿈꾸는 자를 위로하다

입력 2017-01-06 21:14
라라랜드 (La La Land·2016)

꽉 막힌 교통체증 같은 삶 한 가운데에서 일순간 도약이 일어난다. 내면에 흥이 돋고 콧노래가 나오고 마음은 하늘에 닿을 듯 한껏 부풀어 오른다. 영화 ‘라라랜드’의 오프닝은 꽉 막힌 도로 위의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환상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뮤지컬의 매력은 일상에서 판타지로, 현실에서 꿈으로의 전이가 발생하고 이 도약을 음악과 춤으로 표현한다는 데 있다.

주목할 점은 변한 것이 환경이나 외부가 아니라 오직 내면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신이 준 선물, 삶의 축복처럼 어느 순간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전과 이후가 분명히 구분되며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한 것처럼 믿게 하고 꿈꾸게 하는 능력, 생의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이 말한 ‘생의 약동(elan vital)’과 흡사하며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는 성경 말씀과 같다. 비루한 일상을 순식간에 아름답게 물들이는 아이의 환한 웃음과 세파로 깊게 주름진 늙은 부모의 얼굴 위에 드리운 따스한 햇살이 생의 작은 약동을 가져온다. 평범하지만 찬란한 이 순간에 다시 살아갈 용기와 소망을 갖는다.

전작 ‘위플래쉬’를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한국에서 특이한 성공을 거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두번째 영화 ‘라라랜드’에서 과거 할리우드에 오마주를 보내며 빈센트 미넬리에서부터 자크 드미까지 수많은 뮤지컬 영화를 향수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쉘부르의 우산’ ‘로슈포르의 연인들’ 등의 뮤지컬 영화를 불러들이고 프리 재즈 시대를 찬미하며 꿈의 공장 할리우드와 낭만의 도시 파리를 소환한다. 그곳은 120년 전 가난한 이들이 5센트 동전으로 꿈을 사러 들어갔던 영화관이다.

영화 후반부는 꿈의 ‘헛헛함’을 전달하면서 동시에 꿈꾸는 자의 ‘치열함’도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짜든 진짜든 꿈꾸는 모든 이들을 위로하는 오디션 장면이 가장 중요하다. 수없이 오디션에 떨어지고 남자친구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도 결별한 미아(엠마 스톤)는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평범하게 살다 마지막 오디션을 본다. 자유연기를 할 기회를 얻은 미아가 애잔한 노래로 들려주는 이모 이야기는 허물어진 꿈을 꿨던, 실패한 이에게 보내는 위로다.

누군가는 이루지 못할 꿈이 무슨 소용이냐 할 것이다. 사막에 신기루만 있는 것은 아니며 별이 있어 밤하늘이 아름답듯이 꿈이 있어 삶이 아름답다. 꿈은 사람에게 생명수다. 또한 나의 꿈은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되어 지속된다. 아니, 내가 지금 꾸는 꿈은 이전에 다른 이의 꿈이었다.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요 14:12)라고 하신 것처럼 2000년 전 한 젊은 목수가 꿨던 꿈은 지금 수많은 크리스천이 다시 꾸는 꿈이다.

임세은<영화평론가>

약력=△동국대 대학원 영화학과 졸업(석사), 프랑스 파리1대학 영화학과 박사준비과정(DEA) 수료 △서울국제사랑영화제 프로그래머 △DMZ 국제다큐영화제 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