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대통령 만든 ‘신의 한 수’

입력 2017-01-07 00:01
정병국 개혁보수신당(가칭) 창당준비위원장(왼쪽)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창당준비회의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연대론은 대선 때마다 등장했다. 가장 성공적인 연대는 1997년 대선 당시 DJP(김대중·김종필)연합(사진)이었다. 야권은 DJP연합을 통해 헌정 사상 첫 정권교체를 달성했다.

야권은 이후 치러진 대선 국면에서 끊임없이 후보단일화를 시도했다. 민주개혁세력만으로는 정권 창출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시도였다. 야권은 중도층 표심을 공략할 수 있는 후보와 연대해 여권에 맞설 세력군을 구축했다.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이회창 대세론’을 꺾기 위해 연대했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대통령 자리를 예약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막강했다. 노무현 후보는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본선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노 후보는 여론조사를 통해 극적으로 정 후보와의 단일화에 성공했고, 중도보수층까지 아우르는 효과를 거뒀다. 대선 하루 전날 정 후보가 단일화 의사를 철회했으나, 단일화 과정에서 중도 성향표 흡수에 성공하면서 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2012년 대선에서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박근혜 대세론’에 맞서 연대했다. 민주개혁진영을 대표하는 문 후보와 ‘새정치’ 구호를 바탕으로 중도층과 보수층 일부까지 아울렀던 안철수 후보의 연대였다. 진보와 보수의 1대 1 구도를 만들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야권이 갈라지면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없다는 공감대도 작용했다. 하지만 단일화 효과는 크지 않았다. 단일화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과 양측의 입장 차가 부각되면서 효과가 반감됐다는 평가였다. 오히려 위기감을 느낀 보수층이 결집하며 대선은 여당의 승리로 끝났다. 결국 민주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쪼개졌다.

2017 대선 연대론의 주요 공격대상인 문 전 대표 측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국민의당 등이 제기하는 연대론은 파괴력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공학적으로 급조된 연대 세력이 ‘문재인 대세론’을 꺾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 전 대표 측 인사는 “반 전 총장은 그동안 박근혜정권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기 때문에 국민 인식에서도 여권 인사로 분류돼 있다. 김영삼정권과 싸워 야권 인사로 분류됐던 김종필 전 총리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민의당과 반 전 총장이 연합한다면 DJP연합은커녕 ‘신3당합당’보다 못한 정치공학적 야합으로 평가돼 강력한 역풍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