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감사의 조건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감사할 만한 일이 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기 때문에 모든 일이 감사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가사의 찬송가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이 가사처럼 이미 우리 주위엔 감사의 이유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 즉 ‘나’로 인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즉 ‘너희’로 인해 감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4) 사도 바울의 감사 수준을 보십시오. 나로 인한 감사가 아니라 상대방으로 인한 감사, 우리로 인한 감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복을 받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복을 받아 내가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세상에서 우리의 감사 수준은 어디까지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남의 탓’을 하며 살아 갈 때가 많습니다.
우린 ‘자녀의 좋은 모습은 나를 닮아서고, 안 좋은 모습은 당신을 닮아서야’라는 말을 배우자에게 자주 합니다. 이 말을 보면 ‘나 때문에’ 속에는 긍정이, ‘너 때문에’ 속에는 부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남 탓하는 것은 악한 영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가령 사울은 악한 영에 휘둘려서 모든 게 다윗 때문이라고 탓하며 죽이려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와 교인들이 모든 것을 잘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악한 것에 의해 교회가 분열되고 근친상간과 세상 법정에서의 소송, 성적 타락, 우상에 드리는 제물, 교회를 무질서하게 만드는 문제 등으로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감사했습니다. 복음을 말하는 것도 풍족하게 됐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관한 지식도 풍족하게 됐고 4년 전 고린도 교회에 와서 전한 말씀이 견고해졌고 각종 은사들이 나타나는 것에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잘나거나 신앙이 좋아서 주신 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8∼9)
너희가 자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너희를 불러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 즉 교제하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남이 잘되면 내 배가 아픈 세상에서 시기나 질투, 남 탓 등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위로를 삼지 마십시오. 은혜도 내가 잘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내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시고 각종 은사를 주시며 붙들고 계신 것입니다. 이에 감사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상태 목사(서울 왕십리루터교회)
[오늘의 설교] 감사의 이유
입력 2017-01-08 20:34